변화해야 하는데… 뇌는 왜 틀에 갇혀있을까

관성·익숙함서 못벗어나는 이유
인지적 오류 빠진 ‘뇌의 함정’ 때문
기후재앙·AI 등 사회 문제도 외면
진실 탐구보다 심리적 안전 1순위
인류의 발전 가로막는 걸림돌 돼

변화의 시작 이성적 자유서 출발
비판적 사고… ‘메타인지’ 길러야

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 슈테판 클라인/ 유영미 옮김/ 어크로스/ 1만9800원

 

“왜 사람들은 변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변하지 않는가”

독일의 과학 저널리스트 슈테판 클라인이 쓴 이 책은 이러한 풀리지 않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탐험서다. 많은 이들이 처한 상황과 환경이 변화를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진짜 원인은 “우리가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함정’이란 우리 뇌가 자신이 만든 인지적 오류와 고정 관념, 착각에 빠져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책은 고대 문명의 몰락부터 21세기 신경과학 연구까지를 전방위적으로 오가며 인간의 본성과 이성의 작동 방식을 파헤치고 우리가 더 나아질 수 있는 ‘변화의 문화를 만드는 법’을 모색한다.

저자는 “분출하는 화산 속으로 회귀하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날마다 현실을 부정하고 변화를 거부한다”며 “주어진 정보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통계적 확률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저자는 책 머리에서 취재차 카리브해 몬트세랫 화산지대를 찾았던 잊지 못할 경험을 소개한다. 예고 없이 화산이 폭발하자 군대가 주민을 모두 대피시켰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구조 헬기가 날아다녔다. 구조된 주민들이 섭씨 600도에 이르는 뜨거운 용암으로 뒤덮인 자신들의 집으로 되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직 ‘내가 살던 곳’이라는 이유로 이런 행동을 벌였고, 결국 시신으로 발견됐다.



거짓임이 밝혀졌음에도 끝까지 지구 종말을 믿었던 외계인 추종자의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 “1954년,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지구 종말을 예언한 사이비 종교 집단 ‘일곱 광선 형제단’에 잠입했다. 리더 도로시 마틴은 외계인으로부터 12월 21일 대홍수가 닥칠 것이며, 신도들만 UFO로 구원받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신도들은 이 예언을 맹신하여 직장과 재산을 모두 포기한 채 구원의 날만을 기다렸다. 약속된 시간이 되었으나 UFO는 나타나지 않았고 대홍수도 일어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는 예언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신도들은 오히려 기괴한 행동을 보였다. 시간을 늦추기 위해 시곗바늘을 돌리거나, 이를 때울 때 쓴 아말감 때문에 우주선이 오지 않는 것이라며 생니를 뽑기도 했다. 결국 도로시 마틴은 ‘신도들의 정성에 감복한 우주의 신이 지구를 파괴하지 않기로 했다’는 새 메시지를 발표했다. 놀랍게도 신도들은 이 터무니없는 설명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이며 자신들이 세상을 구했다고 믿었다.” <55쪽>

슈테판 클라인/ 유영미 옮김/ 어크로스/ 1만9800원

이런 비이성적인 일들이 기이한 집단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도무지 말이 안 되는데도 기를 쓰고 옛 생활로 돌아가려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다. 다른 일을 할 수 있는데도 불만족스러운 직장을 꾸역꾸역 다니고 있거나, 운동하고 술을 덜 마시면 건강해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간의 생활 습관을 바꾸지 않는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다.

이는 개인만의 문제만이 아니다. 저자는 “기업과 공공기관 등 조직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시대에 맞춰 변화하는 일이다. 전 세계 수천 명의 최고경영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변화를 추구한 계획의 70% 이상이 실패했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사회적 문제와 관련해서는 더 심각하다. 기후재앙, 인공지능의 부상, 급속한 고령화 등 위기 앞에서 변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음에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변화를 거부할까. 많은 이들이 흔히 현재 상황이 힘들어서 변화가 쉽지 않다며 외부 환경을 탓한다. 저자는 이는 외부 상황이 아닌 우리 내면의 모순된 본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원인이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z)’다. 자신의 신념이 현실과 충돌할 때 발생하는 정신적 불편함을 뜻한다. 인간은 이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길을 선택한다. 행동이나 신념을 바꾸어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현실로 복귀하거나, 아니면 현실을 왜곡하거나 새롭게 해석하여 기존 신념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을 희생한 동료나 단원들에게 “내가 틀렸다!”는 사실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기에, 그들은 현실을 희생시켜 믿음을 지키는 두 번째 길을 택한다. 인간의 뇌가 진실을 탐구하기보다 생물학적 생존과 심리적 안정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이다. 인지부조화 상태에서 자신의 잘못된 결정을 바로잡기보다 현실을 왜곡하는 편이 훨씬 쉽다고 느낀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환경 파괴나 전쟁 등 명백한 위기 징후 앞에서도 우리가 왜 익숙한 습관을 고수하며 현실을 부정하고 변화를 거부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인간은 자신을 이성적이라 믿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유지하기 위해 현실조차 기꺼이 미화하는 존재임을 저자는 보여준다.

저자는 인지부조화뿐 아니라 확증편향, 손실 회피, 비현실적 낙관주의 같은 인지적 오류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인간의 지능이 진실을 찾는 도구가 아니라 기존의 오류를 방어하는 무기로 쓰일 수 있음을 경고하며, 현대의 기후 위기나 사회적 갈등 속에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찾지 않고 기존의 것을 고수하는 습성, 반복되는 인류의 고질적인 심리 기제를 성찰하게 한다.

저자는 “변화의 시작은 외부의 강요가 아닌 이성적 결정의 자유에서 출발한다. 현대인은 정보 과잉 시대에 살며 스스로 ‘착각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가짜 뉴스를 식별하는 비판적 사고와 통계적 확률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의 사고 과정을 객관화하는 ‘메타인지’(자기 생각이나 이해 상태를 스스로 인식하고 점검하는) 능력을 기를 때, 인간은 비로소 조작과 편향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