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에 맞춰 대기 중인 영화들 속에서 조용히 개봉하는 보석 같은 작품이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 이마무라 쇼헤이와 함께 일본영화의 영원한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오즈 야스지로의 ‘안녕하세요’(1959)이다. 오즈는 그의 영화를 한 편도 보지 못한 관객에게도 낯익은 영화 ‘동경 이야기’의 감독이다. 1927년(소화 2년)에 ‘참회의 칼’로 데뷔해 1962년(소화 37년)에 유작 ‘꽁치의 맛’까지 일본인들에게 20세기를 통칭하는 개념이자 향수를 자극하는 지나간 시대의 상징인 쇼와 시대를 살면서 일본 서민들의 일상, 풍속의 변화, 가족의 형성과 붕괴 과정을 세밀하게 관찰해 온 그는 명백히 쇼와 시대를 대표하는 감독이라 할 수 있다.
‘안녕하세요’는 그의 무성영화 시대의 걸작인 ‘태어나기는 했지만’의 전후 컬러판 버전으로 언급되는 작품이다. 한국의 70년대, 우리에게도 TV가 대중적으로 보급되던 초기에 마을마다 동네 사람들이 TV 있는 집에 모여 김일의 레슬링을 지켜봤던 시대의 추억이 있듯이, 이 영화의 주인공인 미노루, 이사무 두 형제 역시 TV가 있는 친구 집에서 스모 삼매경에 빠져 있다. 그러나 친구 집에도 못 가게 하고, TV 사달라는 말에는 “쓸데없는 말 말고 공부나 하라”고 핀잔 주는 부모에게 반기를 든 형제는 침묵시위라는 당돌한 방법으로 저항을 시작한다. 형제의 침묵시위는 동네 어른들 사이에 소소한 오해와 갈등을 일으킨다.
오즈의 영화 가운데 가장 유머러스한 이 영화는 아이들의 순진무구한 세계와 아이들로 인해 촉발된 어른들의 소소한 갈등과 오해가 빚어내는 사건들을 흥미롭게 연결한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크고 작은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는데, 그것은 이 영화에 사용된 유머가 누군가를 조롱하거나 비하하거나, 폭력적이거나 불쾌감을 유발하지 않는 청량한 유머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세계가 불러일으키는 이 활력과 엉뚱함은 종종 어른들이 경험하는 생활의 녹진함과 맞물리면서 즐거움과 함께 은밀한 비애감을 불러일으킨다. 맑게 정화되는 듯한 청량감 속에 삶의 페이소스가 눌러 붙는다. 그러나 형제의 집 난로 위에 보글보글 김을 내뿜는 양철 주전자처럼 영화는 시종일관 따뜻한 온기를 잃지 않는다.
그의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이 이 영화에서도 맑은 날씨는 지속되고 먹는다는 행위는 영화의 테마를 구현하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한다. ‘태어나기는 했지만’에서 샐러리맨 아버지의 비애를 목격한 아이들이 단식투쟁을 벌이다가 밥을 먹는 것으로 화해 내지는 갈등 해소의 형식을 갖추듯이, ‘안녕하세요’에서 침묵시위를 벌이며 밥을 거부하고 몰래 돌멩이를 갈아먹는 엉뚱한 형제는 배고픔에 못 이겨 집의 밥솥을 통째로 들고나와 화창한 들판에서 밥을 퍼먹는다. 엔딩부에 드디어 TV를 갖게 된 아이들은 돌가루 먹는 것을 멈추고 밥을 먹는다. 이렇듯 오즈의 영화에서 음식을 먹거나 거부하는 행위는 오즈적인 세계를 창조하는 퍼포먼스이다. 유머와 페이소스를 이끌어내는 영화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은 오즈 특유의 엄격한 디테일과 탄탄한 구조 위에 서 있다. 아이들에게는 쓸데없는 어른들의 인사치레처럼 들리는 “안녕하세요. 날씨가 좋아요”라는 어른들의 인사는 사실상 오즈의 세계에서 가장 따뜻하고 다정한 인사이다.
맹수진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