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400번째 메달’ 안길까…물오른 ‘배추보이’ 예열 끝

스노보드 간판 이상호 8일 출격
평행대회전 두 번째 메달 조준

베이징선 0.01초 차로 8강 탈락
1월 세계 1위 꺾고 월드컵 金
“컨디션 최고조… 기적 만들 것”

한국 스노보드의 선구자 이상호(30·사진)의 별명은 ‘배추보이’다. 강원도 정선 사북 출신인 이상호는 어린 시절 눈만 내리면 가장 먼저 집밖으로 뛰어 나가던 활발한 아이였다. 수확이 끝난 고랭지 배추밭은 눈이 쌓이면 자연스레 썰매장으로 변했다.

 

이상호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배추밭을 썰매장 삼아 눈썰매를 탔던 스토리 덕에 배추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상호가 지난달 11일 스위스 스쿠올에서 열린 2025~2026 국제스키연맹(FIS) 스노보드 월드컵에서 남자 평행대회전 예선 경기에서 코스를 공략하고 있다. AP=뉴시스

배추밭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썰매를 타던 그 소년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정식으로 스노보드의 세계에 입문했고, 이제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스노보드 선수가 됐다.

 

이상호는 한국 설상 종목의 새 역사를 쓴 ‘리빙 레전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알파인 남자 평행 대회전에서 은메달을 따낸 것. 한국 동계올림픽 사상 최초의 설상 종목 메달리스트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이상호의 주 종목인 스노보드의 평행 대회전은 정해진 코스를 가장 먼저 내려가 결승선을 통과하는 선수가 승리하는 방식의 경기다. 예선 기록으로 본선 진출자를 가린 뒤 16강부터는 두 명이 맞대결을 펼치는 토너먼트로 진행된다. 보통 예선은 기록으로 본선 진출자를 가리고 16강부터는 두 명씩 대결하는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된다. 워낙 빠른 속도로 내려오다 보니 0.01초 차이에도 희비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이상호도 그 ‘찰나’의 순간에 운 경험이 있다. 전성기 나이에 참가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이상호는 2021~2022시즌 월드컵 랭킹 1위였다. 강력한 금메달 후보답게 예선을 전체 1위로 통과했지만, 8강에서 0.01초 차이로 패해 2연속 메달의 꿈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이후 4년간 절치부심한 이상호는 여전히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슬로베니아 로글라에서 열린 스노보드 월드컵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세계랭킹 1위인 45세 베테랑 롤란드 피슈날러(이탈리아)를 포토 피니시까지 따지는 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한 뒤 이탈리아에 입성했다.

지난해 3월 폴란드 크르니차 월드컵 은메달 이후 시상대에 서지 못했지만, 올림픽 직전에 열린 월드컵에서 통산 네 번째 우승을 차지해 컨디션은 최고조에 달해있다.

 

이상호가 출전하는 스노보드 남자 평행 대회전은 8일(한국시간) 오후 5시30분 코르티나담페초의 리비뇨 스노 파크에서 예선부터 결승까지 다섯 시간에 걸쳐 진행된다. 한국은 1948 런던 하계 올림픽에서 김성집(역도)의 동메달 이후 동·하계 올림픽 통틀어 총 399개의 메달을 따냈다. 이상호가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에 첫 메달을 선물할 경우 한국 올림픽 사상 통산 400번째 메달의 주인공으로도 이름을 남길 수 있다.

 

이상호를 초등학생 시절부터 지켜봐온 이상헌 스노보드 알파인 대표팀 감독은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번 올림픽 슬로프는 처음 만들어져 처음 경기가 열린다. 모든 선수가 똑같은 조건에서 실력과 정신력을 겨루게 될 것”이라면서 “평행대회전은 특히나 정신력이 중요하다. 변수가 워낙 많고, 예선 1위가 16위에게 토너먼트에서 0.01초 간발의 차이로 패하는 경우가 다반사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상호는 피지컬이나 운동센스가 압도적인 편은 아니지만, 정신력 하나는 정말 뛰어나다. 자기가 갖고 있는 실력과 정신력만 발휘하면 누구에게도 절대 지지 않는다. 이미 최고의 선수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미와 유럽의 전유물이었던 설상 종목에서, 그것도 스피드 종목에서 아시아 선수가 세계 최고를 겨루고 있다. 많은 분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저희를 간절하게 응원해주신다면 그 힘을 받아 0.01초의 기적을 만들어내겠다. 평행대회전은 ‘하늘이 허락해줘야 결과가 나온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대표팀 모두가 평소에 열심히 쓰레기도 줍고 다니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