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국무위원장 딸 김주애가 차기 후계자로 거론되면서 북한 사회의 여성 지위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통계만 놓고 보면 북한의 여성 정치 참여 수준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2020년 기준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중 여성 비율은 17.6%로, 같은 기간 한국 21대 국회 여성 의원 비율(19%)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북한과 한국의 여성 인권 수준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있을까. 실태를 들여다보면 답은 간단하지 않다.
6일 통일연구원이 공개한 ‘북한인권백서 2025’에 따르면 북한은 법·제도적 차원에서 여성의 권리 향상을 위한 조치를 취해 왔다. 2001년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 가입, 2010년 ‘모든 형태의 여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여성권리보장법 제정, 2021년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여성의 권리 반영 등 등이다. 그러나 여러 측면에서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와 양성 불평등이 지속되고 있다.
북한 사회는 전반에 걸쳐 성차별적 관념과 남녀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남아있다. 지난해 심층면접에 응한 탈북민들은 “여성을 존중하는 남성들도 많지만 여성은 남성에게 순응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남아있다”, “집집마다 가장은 엄마들이지만 집안일과 육아는 여성이 해야 하는 걸로 생각한다”, “집집마다 분위기가 다르지만 아직까지 유교사상이 많이 남아있어 여성이 남성을 대접해야 하고, 남자는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많은 여성들이 가정폭력에 노출돼있고 성폭력이 발생해도 적절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탈북민들은 가정폭력을 가정 내 문제로만 규정하는 사회 분위기 탓에 공권력이 개입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증언했다. 성폭력을 당한 것은 망신스러운 일이란 인식이 만연한 데다 성폭력 신고 시 비밀보장이 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인 여성이 보복당하는 경우도 있다는 증언도 다수다.
김정은 집권 이후 정치적,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진출이 다소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상징적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핵심 권력층이나 실질적 의사결정 구조에서 여성의 진출은 여전히 엄격히 제한돼 있는 점에서다. “중요한 지위는 대부분 남성이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 정치 수뇌부는 김여정, 최선희, 현송월을 제외하면 모두 남자”, “식당지배인, 호텔 지배인은 거의 여성이지만 당위원장이 여성인 경우는 없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 힘든데 김여정은 직계라서 가능한 것”이란 탈북민 증언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맥락을 보면 김주애의 등장이 사회 전반적인 ‘여성 리더십 확대’로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다. 북한 사회 전반의 성평등 인식 변화라기보다, 혈통을 중심으로 한 세습 체제의 특수성을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는 얘기다.
백서는 “여성의 경제적 활동 증가로 인해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고 가정 내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측면이 있으나 사회 전반의 가부장제 구조가 강고하게 유지돼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인권 침해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는 못하고 있다”며 “특히 최근 들어 이혼의 자유 통제, 낙태에 대한 통제 강화 등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총평했다.
1996년 이후 매년 국·영문으로 발간된 북한인권백서는 통일연구원이 심층면접으로 확보한 탈북민 증언, 북한 법령 자료, 북한이 국제기구에 제출한 문서 등을 바탕으로 작성한다. 이번 백서는 이재명 정부 들어 첫 발간이다. 지난해 통일연구원의 심층면접에 응한 탈북민 45명 중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북한을 탈출한 인원은 4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