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으로부터의 핵심광물 의존도 낮추기에 나섰다. 120억달러(약 17조 4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해 핵심광물 전략 비축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동맹국 등 50여개국 장관들을 모아 핵심광물장관회의를 만드는 등 공급망 다변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해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치르면서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무기로 꺼내들자 바짝 긴장한 것이다. 공급망은 이제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안보·기술·경제 패권이 교차하는 새로운 지정학의 전장이다.
◆디스프로슘 1년 공급 중단, 美 GDP 16억 달러 감소
지난해 10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경주 회담이 열리기 몇 주 전 중국은 희토류 수출 제한을 대폭 확대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이는 전 세계 모든 국가를 상대로 한 경제적 강압 행위”라며 “사실상 중국이 전 세계 경제와 기술 공급망 전반을 통제할 수 있게 만드는 조치”라고 반발했다. 희토류는 첨단기술 분야와 방위산업 등에 필요한 핵심 소재로, 중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약 70%, 정제·가공은 80%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당시 美 정부·민간의 여러 분석은 단기간에 대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워싱턴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10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중국이 네오디뮴(Nd), 디스프로슘(Dy), 정제 망간(Mn) 등 핵심 광물 수출을 금지했을 때 발생하는 시나리오를 분석했다. 애틀랜틱카운슬이 제시한 바에 따르면 먼저 미국의 공공 및 민간 비축물자가 수주에서 수개월 내 고갈되고, 국방 및 민간 산업이 영향을 받는다. 대체 공급원을 찾기 위해 시장이 혼란에 빠지면서 전 세계에서 가격이 급등한다. 경제 수치로 보면 1년간 네오디뮴, 디스프로슘(희토류의 일종), 정제 망간 공급이 중단될시 미국 GDP는 각각 1억 5400만 달러, 16억 달러, 9600만 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세가지 광물은 모두 전기차 등 첨단 산업에서 쓰이는 핵심 광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핵심광물 비축을 위한 ‘프로젝트 볼트’(Project Vault) 출범 계획을 공식 발표하면서 “우리는 1년 전과 같은 일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미·중 갈등 국면에서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 확대 조치가 미국에 치명적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방위로 공급망 다변화 나선 美
트럼프 행정부는 공격적인 공급망 다변화에 나섰다. 인공지능(AI) 발전 등으로 반도체와 이에 투입되는 핵심광물이 핵심 전략 자원이 되면서 전임 바이든 행정부도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더 전격적이고 직접적으로 공급망 확대 전략을 펼치고 있다. 러시아와의 장기전으로 위기에 내몰린 우크라이나와 광물 협정을 맺고, 동맹국이자 자원 강국인 호주와도 무역 협상 과정에서 광물 협정을 체결했다. 안보적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이 소유권을 주장해온 덴마크령 그린란드에 대해서도 주권을 보장하는 대신 광물 접근권으로 타협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미국 광물 회사를 직접 지원하기도 한다. 미국희토류주식회사(US Rare Earth Inc)에는 최대 2억7700만달러의 직접 자금과 최대 13억달러의 대출을 지원했다. 파키스탄에는 광물 확보를 위해 10억달러 이상 자금을 투자하기도 했다.
4일 워싱턴에서 한국, 호주, 인도, 일본 등 총 54개국 대표단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관계자들이 모여 출범된 ‘핵심광물 장관회의’, 즉 ‘포지(FORGE·Forum on Resource Geostrategic Engagement) 이니셔티브’는 동맹국과 파트너국을 중국 견제 공급망에 연계시키는 전략이다. ‘forge’라는 영어 단어엔 ‘금속을 단조하다’, ‘동맹관계를 구축하다’(forge an alliance)라는 뜻이 있다. 머릿글자를 딴 것과 동시에 광물을 다루는 새로운 공급망 연대를 구축하겠다는 이중적 의미를 담은 작명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 때 만들어진 전신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P)을 확대하는 것으로, 한국이 이전 MSP 의장직을 이어받아 6월까지 의장국을 맡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일 백악관에서 핵심광물 비축을 위한 120억달러 규모의 ‘프로젝트 볼트’ 출범 계획도 발표했다. 공급망 교란에 대비해 국가가 희귀광물을 비축한다는 개념인데, 국가 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이 접근 가능하다는 것이 골자다. 필요 자금은 미 수출입은행(EXIM)의 100억달러(약 14조5000억원) 대출과 민간 자본 약 20억달러(약 2조9000억원)로 조성될 예정으로, 제너럴모터스(GM), 스텔란티스, 보잉, 구글 등 10여개사 등 공급망의 영향을 받는 미국의 주요 기업들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프로젝트 볼트 출범 계획을 발표하며 광물 비축을 석유 비축에 비유했다.
◆트럼프표 공급망 전략 성공할 수 있을까
다만 동맹을 중시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 발 공급망 연대에는 회의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폴리티코는 3일 그린란드 영유권 주장과 관세를 이용한 엄포 등을 앞세운 미국의 강경한 외교 노선이 우방국들의 반발을 사면서 중국에서 벗어난 핵심 광물 공급망을 구축하고자 하는 미국의 구상이 차질을 빚고 있다고 전했다. 폴리티코가 인용한 유럽의 한 외교관은 “백악관이 그린란드와 다보스 건으로 정말 일을 망쳤다”며 “그들은 그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과소평가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 덴마크는 불참했다.
폴리티코는 또 중국과 무역 협상을 맺은 캐나다에 100% 관세를, 미국과의 무역 협정 입법 승인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이유로 한국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 또한 미국의 공급망 다변화 전략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CNN은 미국이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한 파키스탄 광물 확보 프로젝트도 성과가 미미하다고 전했다. 파키스탄에는 구리, 리튬, 코발트, 금, 안티몬 등 약 8조 달러 규모의 핵심 광물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광물 대부분은 지하드 반군이 밀집한 국경지대에 묻혀 있다는 것이다. 특히 2021년 미군의 혼란스러운 아프가니스탄 철수 당시 남겨진 엄청난 양의 무기들이 반군들의 손에 들어가면서 미국이 광물을 확보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공급망 주도 경쟁은 미·중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들에 치열한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다. 특히 호주처럼 자원이 풍부한 국가는 미국 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dpa 통신에 따르면 이날 요한 바데풀 독일 외무장관은 호주 캔버라를 방문해 호주와의 광물 협력 확대 의사를 밝혔다. 한국도 2024년 7월 호주와 경제안보대화를 신설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