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 발코니에 용의 등줄기까지!”…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머릿속이 궁금하다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가우디 서거 100주년 바르셀로나를 가다②

‘인간의 직선’ 거부, 모든 건물에 ‘신의 곡선’ 집요하게 반영/구엘 공원 자연의 광장 ‘물결 벤치’ 대표적/깨진 도자기 조각 수놓은 트랜카디스 기법 눈길/‘뼈의 집’ 카사 바트요엔 산 조르디 전설 담겨/‘직선 없는 건축’ 완결판 카사 밀라/가우디 이미 30대에 구엘 저택 지으며 건축 철학 완성  

 

구엘 공원 자연의 광장 물결 벤치.

산등성이 지형을 그대로 살린 구불구불한 길. 마치 거대한 파도가 일렁이듯 형형색색의 깨진 타일 조각으로 수놓은 물결 모양 벤치. 동굴을 닮은 회랑과 지붕을 떠받치는 숲속의 나무를 닮은 사선형 기둥. 지중해의 강렬한 태양이 사그라다 파밀리아 위로 떠올라 차가운 돌덩이에 신선한 생명력을 불어넣은 구엘 공원(Park Güell)을 비추자 시대를 앞서간 천재 건축가의 숨결도 생생하게 깨어난다.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효순 기자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효순 기자

◆구엘 공원에 흐르는 ‘신의 선’

 

“인간은 직선을 만들지만, 신은 곡선을 만든다.” 안토니오 가우디가 평소 강조한 말로, 그의 건축 철학이 이 문장에 집약돼 있다. 가우디는 이런 신념을 모든 건축물에 집요할 정도로 반영해 직선을 거부하고 신의 곡선을 선택했다. 대표적인 건물이 가우디가 꿈꾼 이상향, 구엘 공원으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품에 안기려 했던 고집이 빚어낸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광장에서 버스로 20분을 북쪽으로 달려 구불구불 경사로를 오르면 바르셀로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카멜 언덕에 있는 구엘 공원을 만난다. 입구에 서자 동화 속 세상을 현실로 마주하는 것 같은 풍경에 탄성이 터진다. 갈색 벽면 위에 하얀 설탕가루를 뿌려 놓은 듯한 물결 지붕, 버섯을 닮은 굴뚝, 곡선으로 일렁이는 창틀은 동화 헨젤과 그레텔이 사는 달콤한 향기를 품은 ‘과자의 집’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가우디는 구엘 공원 건축 당시 초연된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에서 영감을 받아 이 건물들을 설계했다고 전해진다.

 

구엘 공원 입구 파빌리온. 
구엘공원 입구 파빌리온 탑.
드래건 계단에서 본 구엘공원 입구 파빌리온.

가장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직선을 거부한 지붕의 선이다. 가우디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직선을 철저히 배제해 마치 반죽을 빚어 올린 듯, 부드럽게 흐르는 지붕 라인을 완성했다. 입구에서 볼 때 왼쪽 건물은 기념품숍으로 높이 솟은 푸른색·하얀색 체크무늬 탑 끝에 가우디 건축의 상징인 네 갈래 십자가가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꼭대기 전망대에 오르면 구엘 공원이 한눈에 잘 보인다. 오른쪽 건물은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된다.

 

구엘 공원은 원래 가우디의 든든한 평생 후원자 에우세비 구엘이 의뢰해 설계한 럭셔리 주거단지로 1900년 공사를 시작했지만 두 채만 짓고 1914년 중단됐다. 도심에서 너무 멀어 접근성이 떨어지고 가파른 언덕이라 상류층 주거지로 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가우디 사후인 1926년 공원으로 전환됐다.

 

구엘공원 입구 드래건 계단.
구엘공원 드래건 분수와 히포스타일 홀.

‘드래건 계단’을 오르면 동화 속에서 배고픈 아이들을 유혹하던 마녀의 집처럼 100년 동안 여행자를 유혹하던 가우디의 마법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름은 드래건 계단이지만 가운데 조각 작품은 도마뱀 분수로, 가우디는 카탈루냐 수호성인 산 조르디(Sant Jordi) 전설을 구현했다. 마을을 괴롭히던 용을 산 조르디가 무찌르자 용의 피가 스며든 땅에서 장미가 피어났고 산 조르디는 그 장미를 공주에게 바쳤다는 내용이다. 카탈루냐 사람들은 전설에 따라 용을 무찌른 4월 23일을 산 조르디 기념일로 정해 장미(사랑)와 책(지성)을 주고받는다. 가우디는 이런 카탈루냐의 정체성과 기독교 상징을 결합해 드래건 계단을 구현했다. 가우디에게 산 조르디는 단순한 영웅이 아니라, 혼돈을 질서로 바꾸는 힘이자 자연을 다스리는 신앙의 상징이다.

 

구엘공원 히포스타일 홀.
구엘공원 히포스타일 홀.

계단을 끝까지 오르면 거주자 시장 용도로 설계한 히포스타일 홀을 만난다. 천장인 ‘자연의 광장’을 떠받치는 86개의 거대한 기둥은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하는데 사실 기둥 내부에는 빗물을 정화해 저장하는 배수 시스템이 숨어있다. 상부 광장의 물은 기둥 속으로 모여 도마뱀 분수로 배출된다. 천장 모자이크 원형 패널은 해, 달 등 자연의 질서와 우주의 시간을 상징한다. 휴대전화를 셀피 모드로 바닥에 놓고 촬영하면 인물과 천장을 담는 재미있는 사진을 건질 수 있다.

 

구엘공원 자연의 광장.
구엘공원 자연의 광장 물결 벤치.
트랜카디스 기법이 도드라진 물결 벤치.
자연의 광장.

지붕 위로 올라서면 드넓은 자연의 광장이 펼쳐지고 구엘 공원 최대 걸작, 파도처럼 일렁이는 긴 의자를 만난다. 여행자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는 인체공학적 설계와 깨진 도자기·유리 조각을 이어붙이는 가우디만의 독특한 트랜카디스 기법이 돋보인다. 한낮의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의자에 앉자 바르셀로나 시내가 파노라마로 펼쳐지고 거대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손에 닿을 듯 가깝다.

 

가우디 메스로 입장한 이른 아침 한산한 구엘 공원 드래건 계단.
드래건 분수.
물결벤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지중해가 보인다.

구엘 공원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라 예쁜 사진 한 장 찍기 쉽지 않은 곳이다. 일반 관광객이 입장하기 전인 오전 7시~오전 9시30분 무료입장하는 꿀팁이 있다. 바로 가우디 메스(Gaudir Més). 원래 바르셀로나 시민을 위한 무료입장권인데 일반 관광객도 바르셀로나 시청 홈페이지에서 신분을 등록, 가우디 메스 자격을 획득한 뒤 구엘 공원 홈페이지에서 가우디 메스를 받으면 된다. 가우디 메스는 오전 9시30분 이후에도 무료입장할 수 있다.

 

구엘 공원 기동 건축. 
구엘공원 산책로.
구엘 공원 기둥.
구엘공원 회랑 기둥.
구엘 공원 회랑.

광장을 둘러싼 회랑에도 신의 선을 선택한 가우디의 건축 철학이 잘 묻어난다. 모든 기둥은 사선으로 지붕을 떠받친다. 아름드리나무와 식물 줄기가 한데 엉킨 형상으로 만들어 인공적인 건축물이 자연과 한몸인 듯 잘 녹아있다. 마치 거대한 야자수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가우디가 생전에 일부를 완공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동쪽 탄생의 파사드의 조각군과 정확하게 닮았다.

 

까사 바트요.
카사 바트요 야경.
카사 바트요 1층 동물 척추 뼈 모양 계단.

◆‘뼈의 집’ 카사 바트요

 

카탈루냐 광장으로 이어지는 그라시아 거리를 걷다 보면 기괴하면서도 황홀한 외관의 건물에 발길을 멈추게 된다. 해골 모양의 발코니와 사람의 뼈를 닮은 기둥들로 꾸민 건물은 현지인들이 ‘뼈의 집(Casa dels ossos)’으로 부르는 카사 바트요(Casa Batlló). 가우디의 상상력이 절정에 달한 건물로 외벽이 햇살의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색을 바꾼다. 부서진 타일과 유리 파편으로 장식된 벽면은 마치 지중해의 잔잔한 물결이 햇빛에 반짝이는 윤슬을 옮겨놓은 듯하다.

 

까사 바트요 소용돌이 천장.
카사 바트요 곡선 디자인.
카사 바트요 중정 타일.
카사 바트요 엘리베이터.

가우디는 건물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바다로 설계했다. 생물의 척추뼈처럼 부드럽게 휘어져 올라간 나무계단을 오르면 집주인 가족의 거주 공간이 등장한다. 버섯 모양 벽난로가 눈길을 사로잡는데 서로 마주 보고 앉는 벤치를 놓아 추운 겨울 따뜻한 불을 쬐며 오순도순 정담을 나누는 풍경이 떠오른다. 천장은 소용돌이치는 심해의 물굽이를 재현했다. 벽, 천장, 기둥, 문, 창틀은 직선이 없고 마치 물결·해초·동굴처럼 흐른다. 심지어 문손잡이까지 부드러운 곡선이다. 가우디의 천재성은 건물 내부 중앙을 위아래로 관통하는 중정, ‘파티오’에서 정점을 찍는다. 위로 갈수록 짙어지는 푸른 타일의 배치는 빛의 굴절을 계산해 건물 전체에 고른 밝기를 선사하려는 치밀한 공학적 배려가 담겼다. 

 

조셉 바트요 부부.
카사 바트요 응접실
카사 아마트리에.

고풍스러운 책상과 의자가 놓인 살롱에는 집주인 조셉 바트요(Josep Batlló) 부부 사진이 걸려 있다. 당대 재력가들이 경쟁적으로 더 화려한 집을 지으려 했던 재미있는 뒷얘기가 전해진다. 카사 바트요 바로 옆에 계단 모양 지붕이 인상적인 건물은 카사 아마트리에(Casa Amatller). 가우디의 경쟁자이던 호셉 푸이그 이 카다팔크(Josep Puig i Cadafalch)가 초콜릿 재벌 아마트리에를 위해 네덜란드풍 고딕 양식으로 거리의 시선을 먼저 선점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루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Lluís Domènech i Montaner)가 지은 카사 레오 모레라(Casa Lleó Morera)는 섬세한 조각과 우아한 곡선으로 시민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자 질투심에 휩싸인 섬유 재벌 조셉 바트요는 “옆집보다 더 화려하게 만들어 달라”고 가우디에게 요청했다. 이에 가우디는 마치 살아서 꿈틀대는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유기체 같은 파격적인 리모델링으로 카사 바트요를 완성했다.

 

카사 바트요 옥상 트랜카디스 기법 작품들.
산 조르디 전설 담은 용의 등뼈와 십자가.
카사 바트요 옥상 야경.
가우디 큐브.
가우디 큐브.

옥상은 카사 바트요의 절정을 선사하는데 트랜카디스 기법으로 성 조르디 전설을 담았다. 용의 등줄기가 오색찬란한 비늘을 뽐내며 솟아 있고 등에는 용을 무찌른 성 조르디의 칼이 십자가 모양으로 꽂혀 있다. 해가 지고 조명이 하나둘 켜지면 옥상은 알록달록한 동화 속 세상으로 변신한다. 이쯤 되면 가우디의 머릿속이 정말 궁금해진다. 마지막 코스인 지하 1층 몰입형 비디오 아트 공간 ‘가우디 큐브’를 찾으면 된다. 파도, 물결, 뼈, 관절, 나무의 성장, 소용돌이 등의 이미지로 가우디의 건축 세계를 표현했는데 정말 가우디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 같은 환상적인 시간을 선사한다.

 

카사 밀라.

◆도심에 멈춰 선 바위산 카사 밀라

 

그라시아 거리에서는 석회암 덩어리가 파도처럼 일렁이는 또 다른 기묘한 건물을 만난다. 현지인들이 채석장이라는 뜻의 ‘라 페드레라(La Pedrera)’로 부르는 카사 밀라(Casa Milà)로 가우디가 남긴 ‘직선 없는 건축’의 완결판이다. 가우디 건축 철학의 영감이 된 바르셀로나 인근 몬세라트(Montserrat)산의 기암괴석 모습을 도심으로 옮겼다. 부드럽게 굴곡진 외벽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보이고 철을 두드려 만든 난간은 해초가 파도에 휩쓸리는 형상이다. 압권은 지붕 위에 펼쳐진 환상적인 조각 공원. 투구 쓴 기사를 연상케 하는 굴뚝과 환기구들은 옥상을 하나의 야외 갤러리로 탈바꿈시켰다. 안뜰에 서면 빛과 바람의 통로를 설계해 차가운 석조건물 안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가우디의 철학이 잘 느껴진다.

 

구엘저택.
구엘저택.
구엘저택
구엘저택.

카탈루냐 광장에서 카페와 레스토랑이 몰려 있는 람블라 거리를 따라 포트 벨 항구 방향으로 걷다 보면 가우디의 상상력을 현실로 바꾼 후원자가 살던 구엘 저택을 만난다. 역시 가우디의 초기 작품.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 고딕 양식의 중후함과 이슬람양식의 화려함이 기묘하게 섞인 철제문을 통과하면 가우디의 천재성이 시작된 구엘 저택으로 들어선다. 가우디가 30대 중반이던 1888년 만든 건물로 가우디의 세계관이 이미 젊은 나이에 완성됐음을 보여준다. 좁은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수직적 공간감을 극대화하고, 자연의 문양을 철과 돌에 새겨 넣은 그의 집념이 돋보인다. 특히 사그라다 파밀리아, 구엘 공원,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에서 만난 아치·곡면 구조, 중앙 공간 중심 설계, 빛·공기의 연출이 모두 담겨 훗날 그가 펼칠 위대한 건축 서사시의 예고편을 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