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가 사망 이유와 시기 등에 대해 재조사를 하지 않고 진실규명 신청을 각하한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양순주)는 지난해 11월 유족 A씨가 진화위를 상대로 낸 이의신청 기각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유족 A씨는 B씨의 조카로, B씨가 1950년 한국전쟁 시기 국민보도연맹원 등 집단살해 사건으로 행방불명됐다며 지난 2020년 12월 진화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사건을 조사한 진화위는 2023년 11월 ‘B씨가 국민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로 1950년 7월1일부터 7월17일 사이 대전에서 군경에 의해 희생됐다고 판단된다’는 내용의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진화위가 2024년 ‘고 B씨가 1951년 1월6일 고등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위반으로 사형선고 됐다’는 내용의 판결문을 발견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진화위는 B씨가 이적행위 사건으로 사형판결을 받고 형무소에서 사망 출소한 사실을 새롭게 확인해 기존 결정의 사실관계가 틀렸다고 보고 결정 취소 및 각하 처분했다. 유족들은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진화위가 기존 결정을 취소한 것은 적법하다면서도 사건을 재조사하지 않고 각하 결정을 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행정행위를 한 처분청은 그 행위에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별도의 법적 근거가 없더라도 스스로 이를 취소할 수 있다”고 봤다. 판결문 등 기록에 따라 B씨가 1951년 1월쯤까지 살아있었다고 볼 수 있고, 당초 사망 이유, 사망 시기 등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돼 진화위가 진실규명 결정을 취소할 수 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다만 진화위가 별도의 재조사 없이 신청 자체를 각하한 것은 위법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사건 판결에는 판결 이유가 생략된 점, 출소자 명단에 출소 원인으로 ‘사망 출소’와 ‘사형 출소’가 구분돼 기재됐는데, 망인은 ‘사망 출소’한 것으로 기재가 돼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망인이 이 사건 판결의 집행으로 사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1950년 전후로 민간인들이 좌익 활동에 가담했다는 등의 오인을 받아 즉결처형되거나 군법회의에 회부되는 일이 다수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망인에 대한 진실규명 신청 내용이 그 자체로서 명백히 허위이거나 이유가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진화위가 “망인의 사망에 대한 재조사를 진행해 사망 이유, 사망 시기 등을 확인한 후 진상규명 결정 또는 불능 결정을 해야 할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살폈어야 할 것에도 이러한 조사를 하지 않은 채 각하 결정을 한 것은 위법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