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치료 목표는 독립… 일상 유지할 능력 길러야”

아동·청소년 등록 10년새 2배… 치료법은

사회적 관심 늘면서 진단도 증가
언어 등 발달따라 증상 천차만별
상호작용 여부 전체 맥락서 봐야

성장 단계 맞춘 치료 설계 중요
인기 대비 반복·구조화 훈련을

“누구나 꼭 ‘인싸’(인사이더·인기가 많고 활달한 사람)로 살지 않아도 되잖아요. ‘사회성’보다 중요한 자폐스펙트럼 치료 목표는 아이가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겁니다. 모든 육아가 그렇듯이요.”

유희정(사진)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장(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8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성이 자폐스펙트럼의 중요 진단 기준에 들어가 있지만, 실제로 삶을 좌우하는 문제는 의외로 다른 데서 터질 수 있다”며 “시간관리와 우선순위 설정, 위생과 생활습관처럼 자신을 돌보는 능력 등 ‘실행능력’을 어릴 때부터 길러주는 것이 독립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제한적이며 반복적인 행동을 보이는 신경발달 장애다.

최근 드라마·예능 등에서 자폐가 주요 소재로 다뤄지면서 대중의 관심도 커졌다. 덩달아 자폐성 장애인구도 늘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자폐스펙트럼 장애로 등록된 아동·청소년 인구는 2015년 1만3653명에서 2024년 3만57명으로 늘었다. 10년 새 두 배 넘게 증가한 것이다.

유 교수는 “자폐 자체가 늘어났다기보다 과거에는 발달이 전형적이지 않은 아이들이 별다른 평가 없이 ‘조금 특이한 아이’로 넘어가던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제 통계에 잡히지 않던 아이들이 진단 체계 안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눈맞춤, 호명반응, 사회적 미소…’. 자폐스펙트럼에 대한 부모들의 경각심이 높아진 만큼 온라인에는 각종 자가진단표가 나돈다. 그러나 자폐는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이 매우 다양하다. 언어 표현이 유창해 보이더라도 대화가 주고받는 형태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거나, 상대방의 반응을 고려해 말과 행동을 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반대로 말이 늦다고 해서 모두 자폐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연령, 환경, 언어·인지 발달 수준에 따라 보이는 모습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유 교수는 “자폐스펙트럼은 몇 가지 증상으로 단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상호작용을 전체 맥락에서 봐야 한다”며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로 자가진단을 하게 되면 불필요한 공포를 키우거나, 오히려 필요한 개입 시기를 놓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유 교수는 자폐스펙트럼의 원인을 잘못된 양육 방법이나 특정 환경 요인에서 단정적으로 찾으려는 시각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그는 “자폐는 단순히 잘못된 양육 방식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선천적이고 생물학적인 발달장애”라며 “양육 탓으로 돌리는 접근은 보호자에게 죄책감을 안기고, 자폐를 이해하고 지원하는 본질을 흐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복합적이고 다양한 양상으로 발현되는 자폐스펙트럼을 단일 원인에 기대어 설명하려는 시각이 현실을 가린다는 것이다.

자폐스펙트럼은 아직 ‘완치’의 영역이 아니다. 유 교수가 “아이가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를 먼저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자폐스펙트럼은 완치 개념으로 접근하기 어렵기에 치료가 필요한 부분과 아닌 부분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예민한 감각은 타고난 특성에 가깝기 때문에 억지로 교정하려고 하기보다 환경을 조정해 스트레스를 덜어줘야 하고, 반대로 시간 관리나 위생 같은 실행 기능은 반복 학습으로 충분히 길러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 교수는 “중요한 건 아이에게 필요한 지원을 성장 단계에 맞춰 설계하는 것”이라며 “같은 진단명이라도 언어 수준과 인지 기능, 불안과 감각 예민함, 동반 문제에 따라 목표와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만큼 제대로 된 진단이 첫 단추”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효과는 ‘우리 아이가 좋아했다’가 아니라, 충분한 연구에서 반복 검증된 근거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근거가 약할수록 화려하게 포장돼 시장에서 팔리는 경우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자폐스펙트럼 치료는 생애주기에 따라 목표와 방식이 달라진다. 영유아기에는 상호작용과 놀이,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중심으로 한 개입이 필요하고, 학령기에는 학교 환경에서의 적응이 과제가 된다. 또래 관계가 단순한 ‘친해지기’에서 ‘관계의 깊이’로 이동하면서 갈등이 늘 수 있고, 규칙과 변화에 대한 융통성 부족이 학교생활의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 있다. 청소년기로 접어들면 불안과 감정 조절, 수면 문제 같은 동반 증상이 삶을 흔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유 교수는 성인기 전환기를 자폐스펙트럼 아동·청소년이 크게 부딪히는 시기로 꼽았다. 대학 진학이나 첫 직장처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실행 기능이 약하면 어려움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독립은 혼자 산다는 의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성인기의 삶에 필요한 기술을 어느 정도 숙달해 자기 방식의 생활 구조를 갖추는 것이 독립”이라고 설명했다.

이 준비는 청소년기에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이른 시기부터 이어져야 한다고 유 교수는 강조했다. “치료실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일상의 시간이 훨씬 깁니다. 가정과 학교, 일상에서 생활 기술을 차근차근 길러가는 과정이 함께 가야 합니다.”

일상 자체가 훈련의 장이 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유 교수는 “독립된 성인으로서 살기 위한 준비는 18세가 아니라 아주 어릴 때부터 생활 기술을 쌓으며 이뤄지는 것”이라며 “화장실 사용, 기본 생활습관, 규칙 이해처럼 대부분의 아이가 자연스럽게 익히는 과제를 자폐성 아동은 더 의식적으로, 더 구조화해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반 가정에서 ‘육아’라는 이름으로 해오던 독립 준비가 자폐성 아동에게는 더 선명한 목표와 계획 속에서 진행돼야 한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