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우칼럼] 정치가 불붙인 ‘16세 투표권’

저출생·고령화 벼랑 선 韓 사회
미래세대 정치참여 확대는 회피
기성세대 중심 정책 불균형 심화
선거연령 조정 공론화 나서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선거 연령을 16세로 낮추는 방안을 꺼내 들었다. 지난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나온 발언이다. ‘16세 투표권’ 논쟁이 불붙는 모양새다. 사실 이 논의가 처음은 아니다. 과거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의원은 교육감 선거 연령을 16세로 낮추자고 제안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역시 보편적인 선거 연령을 17세로 조정하자고 했다. 이 이슈는 특정 정당의 문제가 아니다. 여야를 넘어 모두가 고민해 봐야 할 의제다.

유럽에서는 오스트리아가 이미 16세 투표권을 도입했다. 자치 지역인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에서 먼저 시행한 영국 역시 전국 확대를 목표로 논의 중이다. 독일과 스위스 일부 주에서도 비슷한 공론화가 진행 중이다. 이는 16세 투표권이 급진적 실험이 아님을 뜻한다. 민주주의 참여 범위를 재정의하려는 노력으로 봐야 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찬성 측은 16세 청소년이 이미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 정책의 직접적인 당사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들을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하는 것은 오히려 모순이라고 본다. 반대 측은 청소년의 과도한 정치화를 우려한다. 아직 배움의 과정에 있는 미성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것이 시기상조 아니냐는 거다. 국방 의무나 완전한 납세 책임을 지지 않는 상태에서 권리만 확대하는 게 과연 온당하냐는 주장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쟁점이 아니다.



이 사안은 정당 간 유불리나 단기적인 선거 전략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취지의 옳고 그름을 떠나,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쇠뿔도 단김에 빼자는 식의 접근은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자칫 젊은 세대의 보수화를 선점하려는 고약한 심산으로 비칠 수 있다.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저출생·고령화의 난제 앞에서 미래 세대의 정치 참여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확장할 것인가다. 이 질문을 회피한 채 제도 도입의 시점만을 저울질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이번 6월 지방선거에서 곧장 도입하기 어려운 이유는 자칫 이 이슈가 정치화·이념화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또 16세 투표권은 법체계의 정합성을 해칠 수 있다. 노동이나 정당 가입은 일부 허용돼 있지만, 병역·혼인·공직 임용의 기준은 여전히 18세에 맞춰져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16세 투표권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이유는 자명하다. 현재의 민주주의가 유권자 수에 따라 작동하면서, 세대 간 정치적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한 해에 태어난 연령대만 놓고 보더라도, 50대 인구는 10대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이러한 불균형은 미래 세대의 제도 불신을 키운다. 연금 개혁이나 정년 연장 같은 중차대한 정책에서 기성세대의 정치적 영향력을 과도하게 강화한다. 세대 형평성이 흔들리면 민주주의도 위태로워진다.

중요한 것은 누가 이 의제를 먼저 제기했느냐가 아니다. 누가 진정성 있는 공론화에 나서느냐다. 이번 장 대표의 제안을 출발점으로 삼아도 나쁘지 않다. 2028년 총선 이전까지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제도적 준비를 거쳐 공직선거법 개정에 나설 필요가 있다. 선거권 연령을 16세로 통일하는 중장기적 로드맵을 국가적 차원에서 마련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고1·고2 학생들의 정치 참여가 성별 갈등이나 이념 대립의 도구로 소모되지 않도록 할 충분한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교육감 선거에만 예외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보통·평등선거의 원칙을 규정한 헌법과의 충돌 논란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의 희망이 고갈되기 전에 결단해야 한다. 머릿수가 많은 세대가 자산 형성과 정책 결정 모두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는 명백한 불균형이다. 결혼과 출산을 늘리는 것만으로 사회의 지속성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국가의 정책과 미래를 결정할 대표자를 직접 선택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책임 있는 시민이 만들어진다. 이런 이유에서 16세 투표권은 그 자체로 충분히 시대정신이 될 수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