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흑인 인종차별 논란 부른 트럼프

美 건국 250돌 ‘흑인 역사의 달’ 와중
오바마 부부 원숭이 묘사 영상 게시
중간 선거 앞두고 정치적 파장 확산
흑인 표심 확장 전략 ‘치명타’ 평가

2월은 미국 사회에서 ‘흑인 역사의 달’로 기려진다. 흑인 역사학자 카터 우드슨이 1926년 2월 둘째 주를 흑인 역사 주간으로 정해 공교육에서 흑인 역사 교육을 확대할 것을 주장했던 것이 2월 전체로 확대된 것이다. 노예 해방 선언을 만든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생일이 2월 12일이고, 흑인 노예 출신 흑인 인권운동가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생일이 14일이라 2월을 ‘흑인 역사의 달’로 삼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올해는 미국 건국 250주년이기 때문에 미국사의 중요한 부분인 흑인 역사의 달도 다채롭게 기획되고 있다. 수도 워싱턴과 근처 버지니아, 메릴랜드에선 흑인음악 콘서트, 흑인사 강연 등이 다수 예정돼 있다. 1619년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에 앙골라인 20여명이 도착한 것이 첫 흑인 노예의 미국 본토 상륙이라 하니 미국 흑인사는 미국사의 거의 전부에 걸치고 있다. 흑인 노예 해방 여부를 놓고 미국이 둘로 갈라져 치열하게 다퉜던 남북전쟁은 현대 미국의 정치, 사회, 문화를 형성하는 가장 핵심 사건이었다. 워싱턴의 국립흑인역사문화박물관을 가보면 미국사에 기여한 흑인들의 이야기들이 전시돼 있는데, 인권운동사뿐만 아니라 문화사, 스포츠사 등에 대한 기여가 막대하다.

홍주형 워싱턴 특파원

이런 2월의 첫 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재까지 미국사의 유일한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부인 미셸 오바마의 얼굴을 원숭이의 몸 위에 합성한 이미지가 포함된 영상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가 비판이 거세게 일자 스스로 내렸다. 문제의 게시물은 2020년 대선 음모론을 다루는 1분짜리 영상이었는데, 중간에 오바마 부부를 원숭이 모습으로 묘사한 짧은 장면으로 전환된다. 흑인을 유인원에 비유하는 것은 뿌리 깊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중 하나다.



주말 내내 워싱턴에선 이와 관련한 비판, 여진이 계속됐다. 상원 유일의 흑인 공화당 의원인 팀 스콧 사우스캐롤라이나 의원은 엑스(X)에 “(게시물이) 가짜이길 기도하고 있다. 이 백악관에서 본 것 중 가장 인종차별적인 일”이라며 “대통령은 이를 삭제해야 한다”고 적었다. “내가 미국이 기회의 땅이라는 증거”라고 말하는 ‘자수성가의 아이콘’ 스콧 의원은 한때 트럼프 대통령의 러닝메이트 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됐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 것이 지난 대선에서 흑인 남성들의 표를 가져오는 데 상당 부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흑인 목숨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 운동 직후 진행된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국적으로 12%의 흑인 표를 받았지만 2024년 대선에서는 15∼16%의 표를 받았고, 흑인 남성 중에선 19%의 표를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퓨리서치센터). 여전히 공화당 지지율이 높지는 않지만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민주당에 대한 실망이 주된 이유였다고 분석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어쨌든 1960년대 이후 가장 많은 흑인 표를 받은 공화당 대통령 중 하나로 기록된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1년여 만에 다시 부주의한 영상으로 인종차별 논란의 핵심에 선 것은 “흑인이든, 히스패닉이든 미국인을 우선하겠다”고 하면서 유색인종의 표를 끌어모은 그에게 큰 실책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콧 의원의 게시물 이후 스스로 영상을 삭제했으며 스콧 의원과 통화했고, 스콧 의원이 자신의 진의를 이해했다고 주장하며 수습에 나섰다. 행정부 고위관계자가 “백악관 직원이 실수로 게시했다. 현재는 삭제됐다”고 해명하는 것만 봐도 이번 사안이 가져올 파장에 대한 당국의 우려가 작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 이미 다양한 인종이 사는 현재 흑백 갈등은 과거의 역사라는 인식이 없지 않았지만, 2020년 BLM 운동은 미국에서 아직도 차별이 만연하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전국적인 운동이었다. BLM 운동이 처음 일어난 미네소타에서 현재 다시 이민 당국의 총격으로 미국 시민이 2명 사망하고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로 번지는 지금, 이번 사태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현재의 배경과 맞물려 파장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