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설 연휴 직후 HBM4 세계 첫 양산… 메모리 판 흔든다

차세대 메모리 시장 전쟁 개막

삼성, 엔비디아 공급계획 발표
이르면 2월 셋째 주 출하 가능
첫 HBM4 납품 타이틀 초읽기
전영현 부회장 부임 이후 성과

하이닉스도 양산 준비 끝낸 듯
점유율 세계 1위 수성에 나서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반도체의 ‘게임 체인저’가 될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4를 설 연휴 이후 세계 최초로 시장에 내놓는다. 시험 단계를 넘어 미국 엔비디아에 납품하는 제품으로, 삼성전자는 이전 세대 제품에서의 부진을 딛고 차세대 시장에서 확고한 1위 자리를 굳히겠다는 전략이다.

8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번 설 연휴 이후인 이르면 이달 셋째 주쯤 엔비디아에 HBM4를 납품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해 구매주문(PO)을 받은 상태다. 삼성전자는 HBM4가 적용되는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가속기 ‘베라 루빈’ 출시 계획 등을 고려해 HBM4 양산 출하 시점을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HBM4와 관련해 구체적인 일정이 정해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10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27회 반도체대전’에서 공개한 HBM3E와 HBM4의 실물 모습. 뉴시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달 29일 열린 실적발표에서 HBM4를 2월 안으로 고객사에 정식 납품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계획대로 삼성전자가 HBM4를 양산 출하에 성공한다면, 경쟁사인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을 제치고 ‘세계 최초 HBM4 정식 납품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반도체 업계에선 삼성전자의 행보를 두고 차세대 메모리 패권을 둘러싼 전쟁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최대 경쟁사인 SK하이닉스와의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SK하이닉스가 HBM 개발에 성공한 이래로, 고성능 메모리 시장에선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보다 늘 우위를 차지했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경쟁사 대비 쌓아온 기술력과 양산 능력이 월등히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2024~2025년 SK하이닉스가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서 강자로 군림한 것도 HBM 기술력 덕분이었다. 현재 가장 많이 팔리는 5세대 메모리 HBM3E의 경우 SK하이닉스가 시장점유율 과반 이상을 차지하며 독주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매출 기준 SK하이닉스의 HBM3E 시장 글로벌 점유율은 57%에 달한다.

그러나 HBM4 시장에선 분위기가 바뀌었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면서다. 삼성전자는 2024년 5월 전영현 부회장이 반도체 사업을 지휘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수장으로 부임한 이후 HBM4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엔지니어 출신인 전 부회장은 ‘기술통’ 경영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전 부회장의 지휘하에 기술력과 수율(생산품 중 양품 비율) 상향에 집중한 결과,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엔비디아가 진행한 HBM4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중순 삼성전자를 방문해 HBM4 시스템 인 패키지(SiP) 시험 결과가 긍정적이란 반응을 전달했다고 한다.

SiP는 여러 개의 칩을 하나의 시스템 반도체로 모은 것으로, 엔비디아는 각사가 만든 HBM4 샘플의 전기적, 물리적, 기능적 특성을 시험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의 샘플이 타사 대비 구동 속도와 효율 측면에서 가장 뛰어난 점수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력 확보에 이어 향후 삼성전자가 정식 납품 타이틀까지 가져간다면 지난 2년간 지속됐던 SK하이닉스 우위 시장의 판이 완전히 뒤바뀔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세계 최고 생산 능력에 최다 제품을 갖춘 삼성전자가 최고 성능의 HBM4 최초 양산을 통해 기술 경쟁력 회복을 입증했다”며 “이를 발판 삼아 가장 유리한 입장에서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도 이에 맞서 기술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부터 HBM4 웨이퍼 투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웨이퍼 투입은 반도체 제조의 첫 단계로, 실리콘 등 원재료를 정제·성장시켜 만든 웨이퍼를 생산라인에 투입하는 과정이다. SK하이닉스도 HBM4 양산을 위한 준비를 사실상 마무리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