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과 일본유신회가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면 다카이치 총리, 그렇지 않으면 (중도개혁연합 소속) 노다 총리나 사이토 총리, 아니면 다른 분이 총리가 됩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달 19일 중의원(하원)을 해산하기로 결정한 이유를 밝히면서 2·8 조기 총선에 ‘정권 선택 선거’의 의미를 강하게 부여했다. 자민당·유신회로 연립정권의 틀이 바뀌고 정책의 대전환에 착수한 만큼 유권자의 재신임을 받겠다는 취지였다.
여당 과반 의석 확보에 “나도 진퇴를 걸겠다”고 한 그의 승부수에 유권자들은 강하게 호응했다. 8일 투표 마감 후 공개된 현지 주요 매체들의 출구조사에서 자민당 단독 과반(233석 이상)은 물론 여당이 개헌 발의선(310석 이상)을 넘볼 수도 있다는 예측이 잇달아 나왔다. 중의원 전체 의석수는 465석이다.
개표 결과가 출구조사대로 확정되면 다카이치 총리는 향후 국정 운영에 날개를 달게 된다. 법안과 예산안 처리에서 더는 야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당 안팎에서의 입지도 강화된다. 그는 지난해 10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는 아소파의 막판 지원으로 당선됐고, 공명당이 연립정권에서 이탈한 뒤로는 유신회의 합류에 힘입어 겨우 ‘약체 내각’을 출범시켰으나, 이번에는 자신의 개인기로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을 만들어 내서다.
파벌 비자금 파문 등 여파로 2024년 10월 중의원 선거, 지난해 6월 도쿄도의회 선거와 7월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연전연패하며 30%대 지지율을 맴돌고 있는 자민당의 이번 승리는 다카이치 내각의 60∼70% 높은 지지율을 빼고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다카이치 총재 메시지’ 영상은 자민당 유튜브 계정에 오른 지 9일 만에 조회 수 1억회를 돌파했다. 일본 인기 가수 요아소비의 히트곡 ‘아이돌’ 뮤직비디오가 35일에 걸쳐 1억회를 달성한 것과 견주면 엄청난 인기다.
마이니치신문은 “자민당은 철저히 총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선거전을 전개했다”고 평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각지 후보들의 지원 유세 요청이 쇄도하는 가운데 최북단 섬 홋카이도부터 규슈 남쪽 가고시마현까지 약 1만2480㎞를 이동하며 ‘일본 열도를 강하고 풍요롭게’라는 선거 구호를 외쳤다. 전날 도쿄 세타가야구 유세 현장에서 만난 20대 대학생은 “그간 자민당 정권이 왼쪽으로 기울었는데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유지를 잘 계승하고 있다”며 “일본을 강하게 만들겠다고 선명하게 외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젊은층의 정치의식과 관심도 높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공천 과정에서 당내 ‘다카이치 색깔’도 진해졌다. 옛 아베파를 중심으로 비자금 파문에 연루된 인사들이 대거 공천된 반면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와 가까운 인사들은 비례대표 후순위로 밀렸다. 다카이치 총리가 ‘자위대의 헌법 명기’ 등 개헌 필요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요미우리신문 설문에서는 자민당 후보 98%가 개헌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선거 승리가 다카이치 ‘친정 체제’ 구축과 장기 집권의 신호탄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그가 국민의 신임을 얻겠다고 말한 ‘정책의 대전환’에는 적극적 재정 외에 방위력의 근본적 강화를 위한 각종 정책이 포함된다. 이에 따라 3대 안보문서 조기 개정, 방위장비 수출 규제 완화, 핵추진잠수함 보유, 국가정보국 창설, 스파이방지법 제정, 외국인 규제 강화 등 보수적 정책의 강력한 추진이 예상된다.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전쟁 가능한 국가’를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헌법을 개정하려면 여전히 ‘여소야대’인 참의원에서도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하고 국민투표도 거쳐야 한다.
다카이치 총리가 향후 강경 우파 본색을 드러내 한·일 관계가 다시 격랑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학계나 외교가에서는 정권 운영에 숨통이 트인 만큼 그가 오히려 여유를 갖고 한국을 상대할 것이라는 반론이 나온다. 자신의 ‘대만 유사시 무력 개입’ 시사 발언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한 터라 한국은 ‘우군’으로 남겨둘 것이라는 관측도 강하다.
1차 시험대는 22일 시마네현의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표현)의 날’ 행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공언했던 대로 정부 참석자를 장관급으로 격상한다면 양국 관계는 급속히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영토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한 이재명 대통령이 용인하기 힘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