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말기이던 2022년 5월 느닷없이 ‘원숭이두창’이란 감염병이 인류를 위협하는 새 요인으로 떠올랐다. 그해 11월 말까지 100개 넘는 국가로 퍼져 8만명 이상이 감염됐다. 깜짝 놀란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에 이어 다시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해야만 했다. 그런데 ‘원숭이두창’이란 병명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이는 1958년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 도중 발견돼 붙은 이름이다. 원숭이 아닌 사람의 발병이 처음 보고된 곳은 1970년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으로 알려져 있다. WHO는 원숭이라는 특정 동물에 대한 혐오감을 조장한다며 병명을 ‘엠폭스’(MPOX)로 고쳤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질병이 주로 아프리카에서 유행해 환자 대부분이 흑인이다 보니 ‘흑인=원숭이’라는 그릇된 편견이 확산하자 WHO가 결단을 내린 것이다.
2023년 4월 아프리카 케냐에서 벌어진 일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인 루마니아의 주(駐)케냐 대사가 나이로비에서 열린 회의 도중 심각한 인종 차별 발언을 했다. 회의실 창문 밖으로 원숭이 뗴가 보이자 이 대사는 대놓고 “저기 아프리카 그룹(African Group)도 우리에게 합류했네”라고 말했다. 흑인을 원숭이에 비유한 것이다. 당시 회의장에 함께 있던 아프리카 국가 대사들을 중심으로 비난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해 6월 루마니아 외교부는 “깊은 유감을 표하고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께 사과한다”면서 해당 대사에게 본국 소환령을 내렸다.
흑인을 무시하는 못된 버릇은 백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2014년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행정부를 겨냥해 북한 측이 내뱉은 막말은 지금도 수시로 소환된다. 북한 국영 통신사인 조선중앙통신은 오바마를 비난하며 “아프리카 열대 수림에 서식하는 원숭이”라고 불렀다. 심지어 “인간의 초보적인 면모도 갖추지 못한 추물(醜物·더럽고 지저분한 물건)”이란 극단적 표현까지 썼다. 당시 미 백악관과 국무부는 “무례하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형편없는 북한 정권이 아프리카 몇몇 나라를 비롯한 국제사회 반미(反美) 진영으로부터는 ‘미 제국주의에 맞서는 자주적 국가’란 칭송을 듣고 있으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일 정적인 오바마와 그 부인 미셸 여사의 얼굴을 원숭이에 합성한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오죽하면 흑인이면서 트럼프의 오랜 측근인 팀 스콧 공화당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조차 “인종 차별적 행위”라고 꼬집었다. 논란이 확산하자 해당 게시물은 12시간 만에 삭제됐다. 다만 트럼프는 ‘오바마 부부에게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엔 “아니다”라고 답했다. 트럼프 SNS 계정을 담당하는 직원의 실수일 뿐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수법으로 풀이된다. 오바마를 비판하고 싶거든 말이나 글로 하면 되지 왜 원숭이를 끌어들이나. 원숭이는 아무 죄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