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떡국을 나누는 설 명절의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그러나 이 따뜻한 정경의 이면에는 음식을 장만하고 집 안팎을 쓸고 닦으며, 어린 조카와 연로한 부모님을 돌보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 자리한다. 가사와 돌봄은 가족의 일상과 성장을 지탱하는 필수적인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동안 국내총생산(GDP) 산정에서 제외되어 왔다. 그 결과 가사노동의 가치는 통계적으로 충분히 조명받지 못했고, 정책 수립 과정에서도 그 중요성이 간과되곤 했다.
국가데이터처는 이처럼 GDP에 잡히지 않는 무급 가사노동을 화폐 가치로 환산한 ‘가계생산 위성계정’을 5년 주기로 작성하고 있다. 음식 준비, 청소, 아이 돌봄 등에 투입된 시간을 측정하고, 이에 상응하는 시장 임금을 적용해 가사노동이 생산한 가치를 산출하는 방식이다. 2019년 기준 우리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약 490조원으로, 당시 GDP의 25.5%에 달하는 규모다. 이 중 여성이 수행한 가치가 356조원으로 남성(134조원)의 2.6배에 이른다는 사실은, 여성들이 체감해 온 가사 부담을 통계적으로 입증한다. 다만, 1999년 이후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라 하겠다.
가사노동의 가치를 측정하는 일은 단순한 수치 산출을 넘어, 우리 사회의 최대 난제인 저출산·고령화 해법을 모색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실제로 성별 가사노동 격차를 보여주는 통계는 장시간 유급 노동 관행을 개선하고 남성의 돌봄 참여를 독려하는 육아휴직 제도 강화의 근거가 되었다. 또한, 높은 가사노동 가치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가사수당’ 도입 검토로 이어졌으며, 조부모에서 손자녀로 이어지는 돌봄의 가치가 수치화되면서 ‘조부모 돌봄수당’과 같은 정책 아이디어의 기반이 마련되기도 했다. 결국 통계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가시화함으로써, 이 거대한 노동을 사회가 어떻게 분담할지 논의하는 출발점이 된 셈이다.
안형준 국가데이터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