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짝패’의 메인 빌런 장필호(이범수 분)의 대사 중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대사가 하나 있다. “강한 놈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오래 가는 놈이 강한 놈이더라.”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깜짝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선수단에 첫 메달을 안긴 김상겸(37·하이원)은 이 명대사에 딱 어울리는 선수다. 2014 소치부터 2022 베이징까지 앞선 세 번의 올림픽에선 예선 탈락 두 번에 16강 탈락의 고배까지. 변변치 않은 성적을 냈음에도 끝까지 버텨내며 ‘오래 가는 놈’이 됐고, 마침내 ‘올림픽 4수’ 만에 은메달이라는 최고의 결과물로 ‘강한 놈’이 되는 데 성공했다.
남자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은 한국 선수단의 첫 메달을 따줄 것이라 기대받던 종목이었다. 다만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2018 평창 은메달리스트 출신인 ‘배추보이’ 이상호(31·넥센)에게 쏠렸지, 김상겸은 아니었다. 그러나 김상겸은 예선 8위로 16강 토너먼트에 오르더니 16강에선 잔 코시르(슬로베니아), 8강에선 예선 1위이자 세계랭킹 1위의 강자로 개최국 어드밴티지까지 등에 업고 싸우던 롤런드 피슈날러(이탈리아)까지 잡는 이변을 일으켰다. 두 번 다 상대 선수의 실수가 나오는 ‘행운’도 따랐다.
1989년생. 어느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김상겸은 마흔 이후에도 올림픽 출전을 꿈꾼다. 그는 “앞으로도 두번 정도는 더 올림픽에 나오고 싶다”면서 “오늘 결승에서 만난 베냐민 카를 선수도 그렇고 이 종목은 오래 하는 선수들이 많다. 체력 관리만 잘 하면 더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각오를 다졌다.
실제로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은 상대 선수와 코스 상태 등 다양한 변수에 대처하는 능력과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멘털 등 경험, 노련미가 중요한 종목이라 40대가 넘은 선수가 즐비하다. 김상겸을 결승에서 꺾고 올림픽 2연패를 차지한 베냐민 카를(오스트리아)도 1985년생으로 41살이고, 김상겸과 8강에서 맞붙은 세계랭킹 1위 피슈날러도 1980년생으로 40대 중반이다. 김상겸의 전성기는 어쩌면 이제부터다. 다섯 번째 올림픽에서는 메달 색깔이 금빛으로 바꿔낼 김상겸의 도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