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아침 출근길, 당연하게 들르던 동네 김밥집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임대 문의’가 적힌 빛바랜 종이가 붙은 유리창 너머로 텅 빈 주방이 보였다.
한때는 단돈 몇천원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워주던 서민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지키는 것조차 버거운 모양이다. 골목마다 풍기던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치솟는 물가에 숨이 ‘턱’…김밥 한 줄에 담긴 고통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다. 국세청 국세통계포털(TASIS)을 들여다보니 현실은 더 냉혹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분식점 사업자 수는 4만9026명. 1년 전보다 2600여 곳이 사라졌다. 5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10%에 가까운 점포가 간판을 내렸다.
코로나19의 터널을 겨우 지나온 소규모 식당들이 이번엔 ‘물가 폭탄’이라는 더 큰 벽을 만난 셈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김밥은 들어가는 재료가 워낙 많아 물가 상승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자료를 보면 기가 찬다. 쌀 20kg 한 포대 도매가는 5만9720원. 식당 한 켠에 쌓인 계산서를 보여주던 사장님은 “불과 1년 만에 앞자리가 바뀌었다”며 혀를 찼다.
김 한 속 가격도 올랐고, 시금치와 달걀값은 20% 이상 급등했다. 사장님들 입장에서는 김밥을 말 때마다 “이걸 팔아서 남는 게 있나”라는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인건비 오르는데 손님 눈치는 보이고…“팔수록 마이너스에요”
재료비만 문제가 아니다. 김밥은 손이 참 많이 가는 음식이다. 채소를 일일이 데치고, 썰고, 볶는 과정에 들어가는 정성은 곧 인건비다. 최근 5년 사이 최저임금은 꾸준히 올랐고, 인력 의존도가 높은 분식점에는 치명타로 작용했다.
가격을 훌쩍 올리기도 어렵다. 소비자들에게 김밥은 여전히 ‘가성비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김밥의 소비자물가지수는 2020년 대비 41.5%나 올랐지만, 손님들은 500원 인상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서울 용산구에서 12년째 김밥집을 운영해온 박모(58) 씨는 거칠어진 손을 문지르며 “예전에는 김밥이 손님을 불러모으는 ‘미끼’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팔수록 밑지는 장사가 됐다”며 “메뉴판에서 김밥을 빼야 하나 매일 고민한다”고 털어놨다.
◆프리미엄의 역설…“우리가 알던 김밥은 더 이상 없다”
살아남기 위해 사장님들이 선택한 전략은 ‘변신’이다. 흔히 보던 기본 김밥 대신 밥을 빼고 계란으로 채운 ‘키토김밥’이나 프리미엄 김밥을 전면에 내세운다. 한 줄에 6000원에서 7000원, 비싼 곳은 1만원에 육박한다.
낮은 마진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서민 음식’이라는 타이틀을 포기하고 객단가를 높이는 고육지책을 택한 것이다.
결국 동네 김밥집의 실종은 단순한 유행의 변화가 아니다. 자영업자의 수익 구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위험신호다. 김밥 한 줄에 담긴 재료는 예전과 비슷할지 몰라도, 그 안에 얹힌 비용의 무게는 과거와 전혀 다르다.
점심 한 끼를 고민하는 당신의 지갑은 어떤가. 가성비의 상징이던 김밥마저 ‘큰맘 먹고 사 먹는’ 음식이 되어가는 현실은, 우리 식탁의 물가 저지선이 이미 무너졌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