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안 나오면 주식 팔지 뭐”... 서울 집값 치른 개미들의 ‘수익 실현’ 2조원

은행 문턱 높이자 ‘증시 자금’으로 서울 상경… 강남 쏠림 뚜렷
지난 9일 서울 송파구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물정보가 붙어있다. 이재문 기자

 

대출 규제가 강화된 이후 서울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는 자금의 원천이 변하고 있다. 은행 대출 한도가 묶이자 주식이나 채권을 처분해 주택 구입 자금을 마련하는 비중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종양 의원(국민의힘)실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서울 주택 매수 자금조달계획서’ 집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서울 주택 매수에 활용된 주식·채권 매각 대금은 총 2조 94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수도권 주담대 한도를 제한한 6·27 대책 시행 직후의 기록이다.

 

◆ 주식 매각 대금 매년 ‘2배’씩 점증

 

자금조달계획서는 주택 취득 자금의 출처를 밝히는 서류로 규제지역 내 모든 주택과 비규제지역 6억원 이상 주택 매입 시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이 서류에 기재된 ‘주식·채권 매각 대금’ 항목을 분석한 결과 서울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된 자본 시장 자금은 최근 3년 사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연도별 유입 규모를 보면 2022년 5765억원까지 감소했던 매각 대금은 2023년 1조 592억원으로 반등했다. 이어 2024년 2조 2545억원을 기록하더니 지난해에는 3조 8916억원까지 불어났다. 매년 약 2배 안팎으로 규모가 커진 셈이다.

 

코스피가 상승 출발한 10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증시 시황이 표시되어 있다. 뉴스1

 

특히 지난해 7월부터 올해 1월까지 7개월 동안 투입된 금액은 2조 3966억원에 달했다. 월별로는 지난해 9월(4631억원)과 10월(5760억원)에 자금 유입이 집중됐다. 10월은 코스피 지수가 4000선을 돌파하며 고점을 찍었던 시기이자 고가 주택에 대한 대출 한도를 추가로 제한한 10·15 대책이 발표된 달이다.

 

◆ 강남 3구 쏠림 현상 뚜렷 전체의 38%

 

주식과 채권을 팔아 마련한 자금은 주로 서울 강남 지역에 집중됐다. 최근 7개월간 지역별 유입액을 살펴보면 강남구가 3784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강남·서초·송파 등 소위 ‘강남 3구’로 흘러 들어간 자금은 총 9098억원으로 서울 전체 유입액의 37.9%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대출 규제와 증시 상황이 맞물린 결과로 보고 있다. 금융권에서 주택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증시 호황에 따른 차익 실현 매물이 부동산 시장의 대체 재원으로 활용됐다는 분석이다.

 

우리은행 남혁우 부동산연구원은 “유가증권 처분 소득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는 것은 자산가들이 주식을 처분한 뒤 상대적으로 안전 자산으로 인식되는 부동산을 매수하는 행위로 이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 오늘부터 ‘코인’ 매각 대금도 신고 의무화

 

한편 부동산 거래 자금의 출처 조사가 더욱 촘촘해질 전망이다. 부동산거래신고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는 이날부터 자금조달계획서 항목에 가상화폐(코인) 매각 대금이 새롭게 포함된다. 또한 해외 예금이나 대출 등 해외 자금 조달 내역도 상세히 기재해야 한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무주택자의 경우 주식 시장에서 얻은 수익을 내 집 마련의 기반으로 삼으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주택은 가격 변동과 무관하게 거주 가치가 유지되는 자산이라는 인식이 주식 매각 대금의 부동산 유입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