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7년도 의대 증원 규모를 490명으로 확정하고 점차 증원 규모를 늘리기로 한 건 의대 교육 현장 여건 등을 고려한 조치다. 이와 동시에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료계 저항을 잠재우려는 ‘정책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전문가와 환자단체 등에서는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의 추계 결과보다 크게 못 미치는 증원 규모가 나왔다며 의료계에 “특혜를 부여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교육현장 부담에 80% 규모 증원”
보건의료정책심의원회(보정심) 위원장인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10일 브리핑을 갖고 “2027년의 경우 기존의대는 증원규모의 80% 규모로 490명를 증원하기로 했다”며 “증원 초기 의대교육 현장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의대 증원 초기 교육 현장의 부담을 덜기 위해 단계적으로 증원하며 인프라를 확충하겠다는 취지다. 2027년도에는 우선 490명만 증원하기로 했고, 2028∼2029년도에는 613명씩 늘리기로 했다. 2030년부터는 공공의대와 지역의대가 설립돼 각 100명씩 신입생을 모집하는 것을 포함해 813명 규모다.
증원 첫해에는 지역 의과대학 증원 규모의 80% 수준만 적용한 셈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5년간 추가로 양성되는 의사인력은 연평균 668명이다. 증원 인력은 비서울권 32개 의대에 전원 ‘지역의사’로 선발된다.
이는 의사인력을 과학적으로 예측하는 추계위의 추계 결과보다 현저히 적은 규모다.
추계위는 지난해 12월 2040년 의사가 5015∼1만1136명 부족할 것이라고 보정심에 보고했다. 회의를 거듭하면서 의사 부족 규모를 줄인 보정심은 2037년 4724명의 의사가 부족할 거라고 추산했다. 공공의대와 지역 신설 의대에서 배출될 인원을 제외하고 연평균 약 825명의 증원이 필요했지만, 이날 발표된 실제 증원 규모는 연평균 668명으로 조정됐다. 결국 추계위가 내세운 ‘과학적 추계’는 정책적 판단 앞에서 대폭 감축됐다. 복지부 측이 의대 증원 상한선을 설정한 이유로 꼽은 의대 교육 여건을 추계위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환자단체 “추계 결과보다 줄여” 비판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행정적 편의나 교육 현장의 일시적인 고충을 이유로 필요한 정원을 감축하는 것은 추계위 설치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의료계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정부의 한계가 결과로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수급 추계를 외면한 보정심의 의대 증원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며 “추계 결과보다 부족한 수준의 증원은 당초 보정심 논의의 출발점이었던 ‘추계위의 결과를 존중한다’는 원칙과 명백히 배치된다. 정부가 스스로 마련한 의사 수급 추계 결과를 축소해 적용한다면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정 장관은 “수급 추계에서 나온 결과를 취사선택한 건 아니다. 교육 여건이 가장 치열하게 논의가 됐고 그에 따라 이렇게 규모가 정리됐다”고 해명했다.
정부는 대학별 증원도 설정했다. 국립대 의대는 정원 50명 이상일 경우 2024년 대비 증원율을 30% 이내로 제한했으며, 50명 미만 소규모 국립대는 100%까지 허용했다. 사립대는 50명 이상 20%, 50명 미만 30% 상한을 적용한다. 이는 지역∙필수의료 인력 양성을 위한 국립대 역할을 강화하고, 소규모 의대의 적정 인원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정부는 또 전공의의 수련 환경을 개선하고,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 신설을 통한 재정투자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의료인의 의료사고 부담을 덜기 위해 안전망을 구축하기로 했다. 환자단체 측은 이와 관련 “(의료계가) 선물을 한 보따리 받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의협 “모집인원 재산정해야” 반발
의협은 대폭 줄어든 의대 증원 결과 발표에도 반발을 이어갔다. 김택우 의협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2027년도에 490명을 증원하는 건 교육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라면서도 “2028년도 이후 증원분에 대해 수정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협은 “파괴된 의학교육을 (정부가) 정상화해야 한다”며 “교육부는 의과대학 전수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모집인원을 다시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대 증원 규모가 정해짐에 따라 구체적인 대학별 정원은 교육부의 배정위원회 심의를 거쳐 4월 중 최종 확정 예정이다. 최은옥 교육부 차관은 의대 교육 여건과 관련해 “2025학년도에 시설 개선 계획을 받아 점차 개선해나가고 있으며 증원분을 배정할 때도 관련 계획을 받아서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의대 증원 인력이 향후 10년 뒤에야 배출되는 만큼 지역∙필수의료 공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당장 의료 공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진료에 의사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행위별 수가제 개편과 비급여 과잉진료∙의약품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