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의 미국이 또...”
자타공인 세계 최강인 한국 쇼트트랙에겐 ‘미국’이라는 두 글자는 많은 감정을 들게 하는 단어다. 유독 미국과 악연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의 아폴로 안톤 오노다. 당대 남자 쇼트트랙 최강자였던 김동성은 남자 1500m 결승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실격으로 금메달을 도둑맞고 말았다. 결승점을 반 바퀴 남기고 김동성이 선두를 달리던 상황에서 이를 추격하던 오노가 김동성이 살짝 부딪힌 뒤 화들짝 놀라는 ‘헐리우드 액션’을 취했고, 이에 심판진은 김동성에게 반칙을 선언하며 두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한 오노의 금메달을 인정했다.
오노는 금메달을 확정한 뒤 미국 NBC와의 인터뷰에서 “김동성은 내 전략에 말려들었고 나는 인코스 추월을 해 (1위로) 마무리 지으려 했지만 그가 나에게 블로킹 반칙을 했다”, “김동성의 실격을 확신했다”고 인터뷰를 남겼다. 오노의 반칙까지 겹치면서 한국인들의 반미 감정은 고조됐고, 그해 6월 주한미군 군인이 조종하던 공병전차에 중학생 두 명이 사망한 이른바 ‘미선이 효순이 사건’으로 한국 내 반미 감정은 최고조에 차오르기까지 했다. 스포가 국민 감정에 얼마나 큰 도화선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장면으로 기억된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에서도 미국이 또 한 번 한국 쇼트트랙을 억울한 탈락으로 밀어넣었다. 이번에도 미국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10일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2000m 혼성계주 준결승에서 3위로 탈락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혼성계주가 처음 생긴 2022 베이징에서도 준준결승에서 탈락하며 금메달을 따는 데 실패했던 한국은 이번엔 준결승 무대에서 탈락하며 또 한 번 금빛 질주에 실패했다.
준준결승만 해도 압도적인 기량으로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해 준결승에 오른 한국은 캐나다, 벨기에, 미국과 준결승을 치렀다. 2025~2026 월드컵에서 최강의 기량을 선보인 캐나다와 쇼트트랙 전통의 강호 한국의 결승 진출이 무난하게 점쳐졌다.
한국은 최민정-김길리, 임종언-황대헌 남녀 에이스 4명을 총출돌 시켰다. 그러나 네 선수가 한 번씩 타고 두 번째 레이스에서 사달이 났다. 3위로 달리던 한국은 여자 첫 번째 주자를 최민정이 아닌 김길리로 교체했다. 김길리가 3위에서 2위로 올라서려고 틈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2위로 달리던 미국의 코린 스토다드가 혼자 가다가 상대들의 방해없이 혼자 빙판에 넘어졌다. 김길리는 스토다드를 피하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곧바로 최민정이 터치해서 다시 달렸지만, 넘어진 여파는 컸다. 결국 3위로 레이스를 마쳐야했다.
상대의 ‘꽈당’으로 인한 3위. 어드밴스가 주어질 것으로 기대됐지만, 순위는 그대로 3위였다. 한국의 김민정 코치는 100달러 지폐를 들고 심판진에게 가서 정식으로 항의했다. 김 코치가 100달러를 들고 심판진에게 달려간 이유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항의 규정 때문이다. ISU 규정에 따르면 경기 판정에 대해 항의를 제기하기 위해선 정해진 시간 내에 100스위스프랑 혹은 이에 해당하는 다른 화폐(달러 유로)와 서면 항의서를 심판에게 제출해야 한다. 일종의 보증금 형식으로, 무분별한 항의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규정이다.
코칭스태프의 즉각적인 항의에도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ISU 규정상 어드밴스를 받으려면 충돌 당시 결승 진출이 가능한 1,2위로 달리고 있어야 하지만, 충돌 당시 김길리의 순위는 3위였기 때문이었다. 한국 쇼트트랙은 첫 금빛 질주의 기회를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