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의 제5영역] AI시대 ‘인간 스토리텔러’가 뜬다

AI가 쓰는 웹소설 도전 열풍… 뻔한 표현에 피로감
투박해도 창작자의 개성 담은 이야기가 더 정감

최근 ‘판사 이한영’이란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웹소설이 원작인 TV 드라마다. 이렇게 성공한 웹소설 원작 드라마의 사례는 하나하나 예를 들기 힘들 정도다. 그러다 보니 웹소설 도전 열풍도 분다고 한다. 노트북컴퓨터만 있다면 누구나 도전해 볼 수 있다는데, 최근에는 ‘소설 써 주는 인공지능(AI)’까지 가세해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고 한다. 너도나도 AI를 활용해 글을 쓰게 시키면서 작품이 폭발적으로 쏟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에는 AI로 웹소설을 쓰는 방법을 연구하는 커뮤니티가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자신의 웹소설이 AI 덕분에 상업적으로 성공했다는 경험담도 적잖게 올라온다. 하지만 정작 AI가 웹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대신 써줬다는 얘기는 없다. 성공담의 대부분은 아이디어가 막힐 때 도움을 받았다거나 복잡한 플롯을 정리할 때 조언을 구했다는 식이다. 핵심 아이디어와 사람의 문체, 두 가지는 AI도 대신해 주지 못했다는 얘기다.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

이들이 지적하는 AI 창작의 문제점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첫째는 일종의 ‘불쾌한 골짜기’ 현상이다. 잡티 없는 사실적인 컴퓨터그래픽 인물을 볼 때 본능적인 불편함을 느끼듯 독자들은 ‘어딘가 AI가 쓴 느낌이 나는’ 이야기에 피로를 느낀다. 글의 완성도 문제가 아니다. 챗GPT, 제미나이 등 평소 쓰던 AI가 쏟아내던 ‘AI다운 뻔한 표현’에 대한 거부감이다. 둘째는 작가의 지루함이다. 소설가가 장편소설을 끌어가도록 만드는 힘은 자신의 캐릭터와 함께 울고 웃는 작가의 개인적인 재미인데, AI 창작은 이런 재미를 급격히 반감시킨다고 한다.



이런 문제는 웹소설만의 것이 아니다. 얼마 전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업들이 절실하게 스토리텔러를 찾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비즈니스 인맥 플랫폼 링크드인 채용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지난 1년간 ‘스토리텔러’라는 직함이 포함된 채용공고가 전년 대비 두 배 급증했다는 내용이었다.

기업들의 절실함도 AI 웹소설의 딜레마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WSJ는 전통 미디어의 영향력이 줄면서 기업들이 ‘우리 회사 이야기’를 직접 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이 상황에서 너도나도 비슷한 AI 콘텐츠를 쏟아부어 기계적인 ‘좋아요’를 유도하는 데만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들도, 똑같은 콘텐츠를 보는 소비자도 모두 지쳐 버렸다.

스토리텔러는 이 틈을 파고든다. 이들의 전략은 ‘전략적인 불완전함’이다. AI와 달리 다소 투박하더라도 창작자의 개성을 담고, 일부러 좀 부족해 보이는 캐릭터를 만들어 소비자를 팬으로 확보한다. 딱딱한 공무원 조직인 충주시청이 한 젊은 공무원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충TV’로 인기를 얻는다거나 어학앱 ‘듀오링고’가 세계 각국에서 인형탈을 뒤집어쓴 부엉이 캐릭터 영상으로 사랑받는 것이 좋은 사례다.

기업은 이렇게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목소리를 낼 스토리텔러를 찾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AI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도 결과물은 인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놀라운 변화다. AI로 인해 사람의 설 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우려하는 세상에서, 스토리텔러의 역할은 사람을 다시 일터로 불러들이는 역설적인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AI가 이런 영역조차 우리에게서 빼앗아 갈지 모른다. 하지만 그날이 오늘은 아니다. 아직까지 사람의 마음을 해킹하는 가장 강력한 알고리즘은 여전히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이니까.

 

김상훈 실버라이닝솔루션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