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과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감소와 생산비용 상승, 산업 현장을 둘러싼 구조적 변화는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통 제조업 중심의 지역일수록 그 충격은 더 크다. 이런 흐름 속에서 전북도가 산업의 방향타를 과감히 꺾었다. 도는 2026년을 ‘인공지능(AI) 로봇 산업 육성 원년’으로 선포하고, 전북을 대한민국 대표 AI로봇 실증·산업화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최근 ‘AI로봇 산업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발표하며 “AI로봇 기술을 실증에 그치지 않고 산업과 기업 성장으로 연결하는 전주기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계획은 단순한 신산업 유치가 아니라, 상용차·농기계 등 전통 제조업에 기반한 전북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전북의 선택은 최근 빠르게 팽창하고 있는 글로벌 로봇 시장을 선점하기 위함이다. 2021년 282억달러 규모였던 시장은 2030년 831억달러로 3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등 주요국이 로봇을 미래 핵심 전략산업으로 규정하고, 국가 차원의 투자를 확대하는 이유다. 한국 정부 역시 로봇을 반도체·바이오와 함께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했다. 전북의 이번 선택은 이런 세계적 흐름과 맞닿아 있다.
◆‘실험실에서 공장으로’ 산업화 거점 육성
◆‘실증-확산-상생’ 전주기 생태계 지원
전북도의 로드맵은 ‘실증-확산-상생’ 3단계로 정리된다. 첫 단계는 실증 기반 시설 구축이다. 피지컬 AI 실증 밸리를 중심으로 농업, 해양, 물류, 제조 분야 실증 거점을 마련하고, AI로봇 특구 지정을 통해 규제 샌드박스를 적용한다. 기술 개발자와 기업이 규제 부담 없이 현장 테스트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두 번째는 산업 확산이다. 전북은 농업·건설·푸드테크·물류를 4대 전략 분야로 정했다. 농업 분야에서는 김제를 중심으로 스마트팜과 AI 기반 지능형 농업로봇 국가산업단지를 2033년까지 조성한다. 건설 분야에서는 2030년까지 427억원을 투입해 용접·도장 등 고위험 작업을 대체할 로봇 시스템을 개발·실증한다. 푸드테크 분야에서는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를 활용해 AI로봇 기반 커스텀 푸드 실증·제조 기반을 구축하고, 물류 분야에서는 새만금 자율주행 실증 지역과 연계해 산단-항만-공항을 잇는 무인 자율운송 체계를 단계적으로 완성한다.
마지막 단계는 상생이다. AI로봇 핵심 부품과 시스템 분야의 선도 기업을 유치하고, AI로봇 펀드를 조성해 창업부터 확장, 투자까지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대·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상생협력 플랫폼을 통해 기술 내재화와 동반 성장을 도모한다.
◆‘대규모 재원 확보·기업 유치’ 관건
전북은 로봇산업에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전국 상용차 생산의 95% 이상을 차지하고, 특장차와 농기계 산업이 집적된 ‘다품종·소량 생산’ 기반은 유연·맞춤형 로봇산업과 궁합이 좋다. 여기에 새만금이라는 대규모 산업부지, 항만과 전력공급, 시험·물류 기반 시설이 결합돼 기업 입지 경쟁력도 높다.
로봇산업 클러스터가 본격 가동되면 제조·소프트웨어·정비·운영·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농사와 건설 현장, 물류 작업 등 위험하고 힘든 일을 로봇이 대신하면서 도민의 안전과 일의 질도 향상된다. 전통 농기계·건설기계·식품 기업은 로봇·AI 기업으로 진화할 기회를 얻게 된다.
다만, 과제도 분명하다. 대규모 투자에 따른 재원 확보와 수도권과의 인재 경쟁, 실증 이후 실제 기업 유치와 양산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 강화가 필요하다. ‘실증의 성지’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기 위해선 중앙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과 장기적 정책 일관성이 관건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비록 늦은 출발일 수 있지만, 도정 역량을 집중해 로봇산업을 육성한다면 전북에 대전환의 기회가 될 것”이라며 “전북이 선택한 AI로봇 산업의 승부수는 실험을 넘어, 산업과 일상에서 검증해낼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김관영 전북지사 “상용차 기반 갖춰 맞춤로봇 생산 최적”
“인공지능(AI)로봇으로 전북의 산업지도를 새롭게 그리고 있습니다.”
전북도가 주력 산업 전략을 ‘보완’에서 ‘전환’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농생명과 상용차, 농기계, 탄소산업으로 이어진 기존 주력 산업 위에 지능형 로봇을 결합해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김관영(사진) 전북도지사는 이를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라고 표현한다.
김 지사는 13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저출산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 생산 비용 상승 등 구조적 변화 속에서 기존 산업 방식만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전북이 처한 현실을 진단했다. 그만큼 단기 처방이 아닌 산업 전환이 필요하고, 그 해법으로 AI와 로봇을 결합한 새로운 성장 전략을 찾겠다는 설명이다.
그는 전북이 로봇산업 경쟁에서 불리한 지역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상용차와 농건설기계를 중심으로 한 다품종·소량 생산 구조는 맞춤형·유연 생산이 핵심인 로봇산업과 궁합이 맞고, 농업·건설·물류·식품 등 로봇 수요가 분명한 산업 현장이 도 전역에 펼쳐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새만금은 전북 구상의 핵심 축”이라며 “제조와 조립, 실증과 물류가 한 공간에서 이뤄질 수 있는 입지 조건은 AI로봇 산업의 실험과 상용화를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전북도가 ‘실증’에 방점을 찍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지사는 실증을 “기업이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라고 표현하며, 산업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기술 개발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인력과 제도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기술보다 먼저 준비돼야 할 것은 사람과 환경”이라며 지역 대학과 연계한 AI로봇 인력 양성 체계를 강조했다. 교육, 실습, 취업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지역에서 바로 확보할 수 있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동시에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규제에 대해서는 과감한 완화를 통해 ‘도전할 수 있는 지역’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전북 기업이 주인공이 되는 로봇산업”을 강조했다. 기업 유치에 그치지 않고, 도내 기업이 로봇 기술을 내재화하고 산업 전환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AI로봇 산업을 ‘미래 대비용 카드’로 보지 않는다. 이미 시작된 변화이며, 지금 대응 않으면 지역 산업 전반이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김 지사는 “이제 변화를 따라가는 지역이 아니라 이를 만드는 지역이 돼야 한다”며 “이 도전이 전북의 성공이자 도민의 성취가 되도록 끝까지 책임질 것”이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