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냉장고 앞에서 우리는 늘 비슷한 고민을 합니다. 톡 쏘는 탄산은 마시고 싶지만, 설탕 덩어리는 부담스럽죠. 그때 눈에 들어오는 ‘제로(0)’라는 글자는 얼마나 달콤한 면죄부인가요. “이건 살 안 쪄, 괜찮아”라며 집어 든 그 음료가 실은 당신의 혈관을 조용히, 그것도 아주 빠르게 위협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최근 설탕 대신 쓰이는 대체 감미료 ‘에리스리톨’이 건강의 구원투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단순히 “몸에 나쁠 수 있다”는 모호한 경고가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혈관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실험실의 데이터가 꽤 서늘한 신호를 보내고 있거든요. 우리가 믿었던 ‘제로’의 배신, 그 이면을 들여다봅니다.
◆‘3시간’이면 충분했다…실험실에서 확인된 이상 징후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미국 콜로라도대 연구진이 내놓은 결과는 꽤 충격적이다. 연구진은 인간의 혈관과 뇌를 보호하는 장벽 세포를 에리스리톨에 노출시켰다. 이때 농도는 비현실적인 수치가 아니라, 우리가 흔히 다이어트 음료를 한 캔 마셨을 때 혈액 속에 흐르는 수준으로 맞췄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단 3시간. 에리스리톨에 노출된 지 불과 3시간 만에 뇌를 보호하는 장벽의 단백질 기능이 뚝 떨어졌다. 혈전(피떡)을 녹이는 능력도 눈에 띄게 약해졌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허혈성 뇌졸중 위험을 높이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세포 실험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우리 몸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화학적 사건’을 미리 본 셈이다.
◆4000명의 피를 뽑아보니…심장마비 위험 ‘2배’
실험실 비커 안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 연구팀이 미국과 유럽의 환자 4000명 이상을 3년간 추적한 데이터는 더 섬뜩하다. 분석 결과, 혈중 에리스리톨 농도가 상위 25%인 사람은 하위 25%인 사람보다 심장마비나 뇌졸중을 겪을 위험이 약 2배나 높았다.
연구팀은 건강한 성인에게 에리스리톨이 든 음료를 마시게 한 뒤 피를 뽑아봤다. 섭취 직후 혈중 농도가 평소의 수백에서 수천 배까지 치솟았다.
이 높은 수치는 며칠 동안이나 떨어지지 않고 유지됐다. 연구팀은 이 농도가 “혈소판을 끈적하게 만들어 혈전을 유발하기 충분한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젊은 뇌졸중과 ‘제로 열풍’, 우연한 겹침일까
이 연구들이 유독 뼈아픈 건 최근의 사회 현상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통계를 보면 2011년 이후 젊은 성인의 뇌졸중 발생률이 15%가량 늘었다. 전문가들은 비만이나 고혈압뿐만 아니라, 급변한 식습관을 유력한 용의자로 꼽는다.
지금 편의점 진열대를 점령한 단백질 바, 제로 칼로리 음료, 다이어트 아이스크림의 뒷면을 보자. 어김없이 ‘에리스리톨’이 적혀 있다.
혈당을 올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뇨 환자와 건강을 챙기는 2030 세대가 주 소비층이다. 건강해지려고 선택한 습관이 오히려 젊은 뇌졸중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역설이다.
◆지금 필요한 건 ‘제로’가 아닌 ‘균형’
물론 공포에 질려 당장 모든 제로 음료를 하수구에 쏟아버릴 필요는 없다. 식품첨가물 연구는 데이터가 쌓이면서 결론이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조차 “장기적인 체중 감량 효과는 불분명하고 잠재적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며 신중론으로 돌아선 점은 의미심장하다.
설탕이 ‘독’이라고 해서 대체 감미료가 무조건 ‘약’은 아니다. 중요한 건 ‘물처럼 마시지 않는 것’이다. 제로 음료는 탄산음료의 대안일 뿐, 물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오늘 점심, 습관적으로 집어 든 음료의 성분표를 한 번 더 들여다보자. 당신의 혈관은 지금 ‘달콤한 휴식’이 아니라 ‘3시간의 사투’를 벌이고 있을지 모른다. 내 몸을 지키는 건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라, 아는 만큼 조절하는 균형 감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