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백유의스포츠속이야기] 책임 진 어른이 없었다

지난 7일 막을 올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이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했다. 10일 한국의 메달박스인 쇼트트랙 경기가 시작돼 열기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쇼트트랙 팬의 시선은 남자부 경기에 나서는 두 인물, 린샤오쥔(중국·한국명 임효준)과 황대헌에게 쏠려 있다. 한때 태극마크를 달고 한솥밥을 먹던 선후배 사이에서 이제는 한국과 중국의 국기를 가슴에 단 ‘숙적’으로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선수의 대결은 이번 올림픽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이고도 드라마틱한 장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악연은 2019년 진천선수촌에서의 ‘성희롱 사건’으로 시작됐다. 훈련 도중 사소한 장난에서 비롯된 충돌은 법정 공방으로 번졌고, 결과적으로 한국 쇼트트랙의 보배였던 임효준은 린샤오쥔이 되어 중국인이 됐다. 그는 이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그는 이미 ‘스포츠 유목민’의 길을 선택한 뒤였다. 반면 황대헌은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이후 각종 대회에서 잦은 반칙을 범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비호감 이미지라는 또 다른 굴레에 갇혔다.

 

이번 대결은 단순한 메달 경쟁을 넘어선다. 서른 줄에 접어든 린샤오쥔과 20대 후반의 황대헌에게 이번 올림픽은 사실상 마지막 명예 회복의 기회다. 린샤오쥔은 8년의 인고 끝에 중국의 ‘에이스’로서 증명해야 한다.

 

우리는 이 대결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일부에서는 린샤오쥔의 선택을 ‘배신’이라고 재단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얄궂은 운명이 빚어낸 한 편의 드라마로 지켜보는 시각도 있다. 쇼트트랙이라는 좁은 생태계, 과도한 경쟁과 파벌주의가 낳은 이 기구한 운명은 우리 체육계가 여전히 안고 있는 구조적 상처이기도 하다.

 

나는 다른 관점에서 지적하고 싶다. 2019년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한체육회, 진천선수촌의 관계자들은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여론의 눈치를 보며 자신들의 귀책을 덮기 위해 문제를 외면했다. 그것도 모자라 임효준에게 책임을 돌려 중징계하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선수촌에서 훈련 시간에 벌어진 일임에도 책임자 처벌은 없었다. 빙상계 원로들도 이들의 갈등을 외면했다. 이게 더 가슴 아프다.

 

어쨌거나 밀라노의 링크는 이들의 해묵은 상처에 대해 결론을 낼 것이다. 승부의 끝에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더 깊은 골을 남길지, 혹은 극적인 화해의 장면을 보여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내일의 레이스가 단순한 기록의 경신이 아닌 두 인간의 명예와 삶이 부딪치는 치열한 증명의 장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성백유 대한장애인수영연맹 회장·전 언론중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