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의 미래] 언론의 ‘에너지 편식’ 괜찮을까

머스크의 태양광 구상 침묵하고
SMR엔 과잉 반응 쏟아내는 언론
‘아젠다 세팅’에 갇힌 기후 대응
언론의 책임감 계속 자문해야

“(1973년) 9월 초부터 12월 말까지 매주 독일의 석유 비축량에 관한 부정적인 의견이 긍정적인 의견보다 많았다. 게다가 10월과 11월에는 그 상황을 ‘파동’이라고 묘사하는 일이 점점 잦아졌다. … 그렇다면 그해 가을 독일에 정말 에너지 파동이 일어났을까? … 실제로는 9월과 10월에 독일의 석유 수입량은 그전 해의 같은 기간보다 훨씬 많았고, 11월에는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주요 독일 신문은 9월부터 2월까지 석유와 석유 제품의 비축량에 관한 기사를 1400건 넘게 실었다. … 신문에서 에너지 관련 상황을 중요하게 보도하자 독일 대중은 강력한 행동을 보이며 반응했다. 10월에 석유 제품의 판매량이 치솟은 것이다.” (맥스웰 맥콤스 ‘아젠다 세팅’)

이달 초 금융계에 있는 아무개 씨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았다. ‘빅테크가 소형모듈원전(SMR) 100MW만 계약해도 국내 뉴스가 쏟아지는데 일론 머스크가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매년 태양광 100GW(10만MW)씩 만들겠다고 얘기한 건 아무리 찾아도 국내 언론엔 없네요, 제가 못 찾는 건지…’

윤지로 비영리 미디어단체 클리프 대표

무슨 말인가 싶어 찾아보니, 과연 그랬다. 지난달 열린 WEF에서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스페이스X와 테슬라는 각각 미국 내에서 연간 100GW 규모의 태양광 제조 역량을 구축할 것이다. 대략 3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했다. 최근 테슬라 홈페이지에는 태양광 제조 개발 엔지니어 채용 공고도 올라왔다.



100GW라고? 잘못 본 줄 알았다. 현재 미국의 모듈 제조 용량은 총 60.1GW다. 그나마 조 바이든 정부 때 적극 지원해서 이 정도가 됐고, 잉곳과 웨이퍼까지 포함하는 가치사슬 전반은 지난 3분기에야 완성됐다. 그런데 이걸 3년 만에 100GW 규모로(우주에서 쓸 태양광까지 합하면 총 200GW), 그것도 폴리실리콘부터 모듈에 이르는 전 과정 생산 체계를 갖추겠다는 게 머스크의 구상이다. 3년이든 5년이든 현실화만 된다면 태양광 제조 패권의 좌표가 움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국내 언론은 내내 조용하다 이달 초 머스크가 파견한 팀이 중국 태양광 기업과 접촉했다는 중국발 기사가 나오자 이제야 조금씩 보도를 내놓고 있다.

이에 비하면 SMR에 쏟아지는 관심은 각별하다. 구글이 미 스타트업 카이로스와 500MW(0.5GW) 전력구매 계약을 했다거나 아마존이 엑스-에너지에 지분투자를 했다는 기사는 스크롤을 한참 해도 끝나지 않을 정도로 봇물을 이룬다. 기사만 보면 전력에 목마른 빅테크들이 SMR 전기를 구하려 혈안이 된 것 같은데, 사실 SMR에서 이들 기업으로 흘러 들어오는 전기는 아직 없다. 재생에너지와는 수백 배 전력 구매 계약을 했고 이미 많은 전기를 공급받고 있지만, 이 같은 사실은 그다지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중국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도 다분히 선택적이다. 중국은 20년 전부터 더러운 공장에서 녹색 엔진으로 심장을 갈아 끼우고 있었지만, 오랜 기간 보도의 초점은 ‘최대 배출국’에 맞춰져 있었다. 어느 날 중국이 녹색 패권국으로 부상한 뒤에야 중국산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가 시장을 잠식한다며 불편하고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미국 언론학자 맥콤스는 ‘아젠다 세팅’에서 ‘속성 아젠다’와 ‘점화효과’로 언론의 힘을 설명한다. 1973년 중동의 석유 무기화가 독일에서 석유 비축 위기로 해석돼 사재기를 부추긴 것처럼 언론은 무엇을 다룰지 선택할 뿐 아니라, 어떤 속성으로 다룰지 정하고(속성 아젠다), 그 속성을 반복해 시민이 정책을 평가하는 기준을 형성한다(점화효과)는 것이다. 유튜브로 미디어 지형이 확장된 요즘도, 사건을 취재·검증해 사회적 의제로 올리는 역할에서만큼은 레거시 언론이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언론이 어떤 사실을 선택하고 배제하느냐에 따라 대중이 인식하는 세상의 지도가 달라진다. 지금 언론은 기후 대응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두고 무엇에 침묵하고 과잉 반응하는지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계속 자문해야 한다. 지구뿐 아니라 언론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렇다.

 

윤지로 비영리 미디어단체 클리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