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서방 제재 4년을 버틴 러의 내구력

경제 파탄 예견 비웃은 4%대 성장세
치밀한 사전 대비와 제재 빈틈 활용
러 특유의 정치문화·인내력 등 저력
전쟁 길어질수록 도약·쇠퇴 기로에

4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 미국과 서방은 즉각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가했다. 서방측은 러시아산 에너지 금수 조치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퇴출 등 고강도의 대러 제재를 실행했다. 그러나 혹독한 제재에 직면해 얼마 가지 않아 경제적 파탄에 직면할 것이라는 서방측의 기대와는 달리 러시아 경제는 놀라운 내구력을 보여주었다.

개전 첫해인 2022년에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1.4% 감소했다. 그러나 2023년부터 2년 연속으로 4% 이상의 성장세를 나타냈다. 이는 세계 평균보다 높은 성장률이다. 외환보유액이 전쟁 이전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루블화의 가치는 안정세를 보였고, 실업률은 4% 이하에 머물렀다.

장덕준 국민대 명예교수·유라시아학

그렇다면 러시아의 그러한 내구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첫째, 2014년 크림반도 병합으로 인한 서방의 경제제재를 이미 받아온 러시아는 나름대로 대비책을 마련했다. 러시아 정부는 화폐·금융 긴축정책으로 재정적인 여력을 비축했다. 모스크바는 6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과 GDP의 10%에 달하는 국부펀드를 조성했다. 또한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20% 이하로 유지했다.



둘째, 서방 제재에는 빈틈과 한계가 있었고 러시아는 이를 활용했다. 서방측은 제3국을 통한 금융거래와 교역을 막지 못했다. 그 결과 러·우 전쟁 이후 러시아의 경상수지 흑자는 전쟁 이전보다 50% 증가했으며 외화 소득은 더 늘어났다. 유럽에 대한 에너지 수출이 막히자, 러시아는 대러 제재 불참 국가들을 대안적 교역 파트너로 선택했다. 그리하여 2021년 대비 2023년 중국, 인도, 튀르키예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증가율은 각각 50%, 1900%, 600%를 기록했다.

셋째, 서방의 대러 제재를 위반하는 행위자에 대한 제재 조치(세컨더리 보이콧)는 효과적이지 못했다. 그러한 허점으로 인해 러시아는 아르메니아, 우즈베키스탄 등 옛 소련 국가들뿐만 아니라 중국과 튀르키예 등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입 방식으로 서방의 물자들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러시아는 중국, 튀르키예 등으로부터 민수품과 군수품으로 두루 사용될 수 있는, 이른바 ‘이중 용도 품목’을 수입함으로써 드론, 무기 등 전쟁 수행에 필요한 부품을 조달받을 수 있었다.

넷째, 러시아는 ‘전시경제’ 체제를 통해 경제를 오히려 부양시킬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기존의 생산 체제를 전쟁 물자 생산 체제로 전환함으로써 고용 창출과 경제적 활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러시아 중앙은행은 20%대의 높은 금리를 유지함으로써 인플레이션율을 10% 이하로 통제했다. 또한 2014년 이후 축적된 수입 대체 산업화에 대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를 오히려 국내 산업 진흥의 기회로 활용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 특유의 정치문화를 들 수 있다. 러시아인들은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비상한 인내력을 발휘했으며 지도자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러시아인들은 1812년 나폴레옹의 침략과 1941년 나치 독일의 침공에 맞서 승리했다. 그들은 또한 볼셰비키 혁명 직후의 극심한 경제난과 소련 붕괴 이후의 경제 위기 때에도 놀라운 인내력과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러시아인들의 저력과 인내력에 더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인적, 물적 자원과 국력의 현격한 차이를 고려할 때 일단 시간은 러시아 편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질수록 중장기적 전망은 불투명하다. 서방의 제재는 계속될 것이고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악화할 것이다. 게다가 외국인 투자와 기술 도입 등의 어려움 탓에 경제 성장은 한계에 봉착할 수 있다. 그것은 러시아가 불황 속의 물가 상승, 즉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지난 4년간 전장에서는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해외로 이주하는 시민들이 크게 늘었다. 그 결과 러시아에는 심각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빚어졌다. 특히 고학력자와 전문 인력의 해외 유출은 장기적으로 러시아 경제의 성장 동력을 갉아먹을 것이다. 이는 미래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인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분야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과연 이 전쟁은 러시아가 열망하는 글로벌 강대국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인가, 아니면 쇠퇴의 변곡점이 될 것인가.

 

장덕준 국민대 명예교수·유라시아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