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기 오규진 노선웅 기자 = 설 연휴를 앞두고 연초부터 정국이 급격히 경색되고 있다.
5개월여 만에 열릴 예정이던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오찬이 12일 행사 직전에 돌연 취소됐고 오후 국회에서 비쟁점 민생법안들을 처리하기 위해 잡아둔 본회의는 국민의힘의 보이콧 속에 '반쪽 개의'를 했다.
파행의 버튼을 직접 누른 건 국민의힘이다. 장동혁 대표가 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와의 청와대 오찬 1시간 전 전격 불참을 통보했고, 곧이어 자당 의원들의 본회의 보이콧까지 선언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청와대 오찬 불참과 국회 일정 보이콧의 이유로 여권의 사법개혁법안 일방 처리를 지목하고 있다.
전날 밤늦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민주당 및 조국혁신당 등 범여권 주도로 재판소원법(헌법재판소법 개정안)과 대법관증원법(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일방 처리한 것이 사태의 발단이라는 것이다.
장동혁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어제 민주당이 법사위에서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법률과 대법관 증원 법률을 일방 통과시켰다"며 "한 손으로는 등 뒤에 칼을 숨기고 한 손으로 악수를 청하는데 오찬에 응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여야가 민생법안들을 합의처리키로 예정했던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같은 이유로 나타나지 않았다.
당초 2시 개의 예정이던 본회의는 1시간 30분가량 연기된 뒤 열렸는데, 민생 법안은 당초 계획보다 절반 가까이 줄어든 60여건만 본회의에 상정돼 범여권 주도로 통과됐다.
명절 연휴를 앞두고 열리는 본회의인 점을 고려해 민주당 의원들은 한복 차림으로 본회의장에 나왔다. 국민의힘의 본회의 보이콧 등 국회 활동이 파행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게 아니냐는 인상을 남겼다.
급격히 얼어붙은 정국 상황을 두고 여야는 책임 공방에 열을 올렸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사법개혁안 일방 처리를 물고 늘어졌다.
장 대표는 "정 대표가 이 대통령을 위해 준비한 설 명절 선물이 국민께는 재앙이 되고 말았다"며 "오찬 회동이 잡힌 다음 이런 악법을 통과시킨 것도 이 대통령을 의도적으로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 대표는 정 대표를 겨냥해 "특검 추천도 마찬가지고, 여러 문제에서 대통령의 'X맨'을 자처한다"고 비꼬기도 했다. 최근 특검 후보 추천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보완수사권 등 이슈에서 당청 간 이견이 노출된 점을 꼬집은 것이다.
민주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정 대표는 본회의 개의 직전 의총을 열고 "청와대 오찬 시작 불과 한 시간 전에 국민의힘 장 대표가 취소했다. 청와대 오찬을 요청한 것도 본인인데 이 무슨 결례인가"라며 "대통령에게 이렇게 무례한 것은 국민에 대한 무례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맞받아쳤다.
특히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재판소원법·대법관증원법 등 사법개혁의 법사위 통과를 문제 삼는 데 대해 "왜곡된 '방탄 프레임'으로 사법개혁의 본질을 흐리지 말라"(문금주 원내대변인)며 방어막을 쳤다.
백승아 원내대변인은 "(법사위) 상임위는 일정과 계획, 절차대로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지 원내 지도부가 따로 지침이나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민주당 일각에선 전날 밤 법사위가 국민의힘 반발 속에 사법개혁 법안을 처리한 데 대한 불편한 기류도 감지된다.
법사위가 설 연휴 직전 본회의를 앞두고 야당의 반발을 키울 수 있는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한 수도권 민주당 의원은 "사법개혁 법안은 오늘 본회의에서 처리할 사안도 아니었는데 법사위가 어젯밤 사고를 친 것"이라며 "설 전에 대통령이 여야 지도부를 모아 대미투자법 등 민생을 챙기고 협조를 당부하는 그림을 다 망쳤다"고 말했다.
문금주 원내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법안 처리에 앞서 법사위와 원내 지도부 간 소통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원내 지도부는 여러 상황을 고려해 설 이후 사법개혁 법안을 처리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전달했던 것으로 안다"며 "다만 법사위 운영은 그렇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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