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천재만이 아니었다. 좌절과 고통도 딛고 일어설 줄 아는 근성이 있었기에 영광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바로 한국 스키·스노보드 사상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최가온(세화여고)의 이야기다.
최가온은 13일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결선에서 90.25점을 받아 88.00점을 기록한 클로이 김(미국)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스노보드 하프파이프는 반원통형 슬로프에서 선수들이 펼쳐 보이는 공중회전과 점프 등의 연기를 심판들이 채점해 순위를 정하는 경기다. 숀 화이트, 교포 선수 클로이 김(이상 미국)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있을 만큼 가장 잘 알려진 종목이기도 하다. 한국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김호준이 처음으로 출전하며 걸음마를 시작했지만 빠르게 국제무대 경쟁력을 갖췄고 그 중심에 최가온이 있었다.
최가온도 취미로 스노보드를 즐긴 아버지의 영향으로 입문해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성장한 선수다. ‘피겨 여왕’ 김연아를 보며 피겨스케이팅을 배웠다가 스노보드에 반해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는 그는 2023년 1월 세계적인 익스트림 스포츠 이벤트 X게임에서 최연소 기록(14세 2개월)으로 파이프 종목 우승을 차지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같은 해 12월엔 생애 첫 월드컵 우승까지 이루며 무섭게 성장하던 최가온은 2024년 초 스위스 락스에서 열린 월드컵에 출전했다가 훈련 중 허리를 심하게 다치는 큰 위기를 겪었다. 척추가 골절돼 수술을 받고 1년여를 재활에 매달려야 할 정도였다.
평소엔 수줍음 많은 여고생이지만, 큰 부상에도 아픈 것보다 대회에 나갈 수 없는 게 속상해 눈물을 보일 만큼 파이프에서만큼은 욕심 많은 ‘승부사’ 기질을 드러냈기에 길고 어려운 재활도 이겨낼 수 있었다.
이렇게 다시 복귀한 최가온은 지난해 초 월드컵에 복귀해 동메달을목에 걸고 부활을 알렸고, 올림픽이 열리는 이번 시즌엔 완전히 기량이 물이 올랐다. 지난해 12월 중국과 미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했고, 지난달 중순엔 락스 월드컵을 제패하며 이번 시즌 자신이 출전한 월드컵에서는 모두 우승하는 놀라운 기세를 보였다.
이렇게 금메달의 기대감을 가득 품은 채 최가온은 이번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올림픽에 나섰다. 예선에서 6위에 오르며 한국 하프파이프 선수로는 처음으로 결선에 올랐다.
이날 결선에선 ‘악바리 승부사’ 기질로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썼다. 1차 시기 초반 보드가 파이프 문턱에 걸리는 실수로 크게 넘어지는 아찔한 상황을 겪었고, 상태를 점검받은 뒤 2차 시기에서도 연기 초반 넘어지며 메달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3차 시기까지 끝까지 치러 대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3번의 도전 만에 경기를 제대로 치른 최가온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제일 높은 점수로 보상받았다. 최가온은 평소 우상으로 동경해 온 '여왕' 클로이 김의 올림픽 3연패를 저지하며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첫 금메달 주인공도 됐다. 아울러 클로이 김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세운 이 종목 최연소 금메달 기록(17세 10개월)을 경신(17세 3개월)하며 새로운 ‘스노보드 여왕’의 탄생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