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현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우린 분해와 죽음을 존재의 본질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김용출의 미술의진심]

“사실,” 어느 날 이은재 작가(37)는 또다른 거절의 대답을 내놨다. 그것은 그 동안 미처 상상하지 못한, 전혀 새로운 이야기였다. “그림이 썩어서 못 팔아요.” 그림이 썩다니, 아니 이것은 또 무슨 말인가.

 

그러니까 무엇이든 좋으니 딱 한 점만 팔면 안 되겠느냐, 고 사정할 때마다 이 작가에게선 완곡한 거절의 대답이 돌아왔다. 계란 노른자로 그린 그림 <이제 근대 모서리를 닦아라-서문>(2023)을 비롯해 좋은 그림을 그리는 전도유망한 작가라 생각했기에 개인적으로 소장할 수 있기를 바라던 차였다.

 

이은재, ‘이제 근대 모서리를 닦아라-서문’, 2023, 204×130㎝.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 작가는 그냥 거절하기 뭐했는지 이런저런 변을 뒤따라 보냈다. 만들어 놓은 작품 수가 많지 않아 앞으로 전시를 할 때 필요할 것 같다는 둥, 아직 실력이 모자라 팔 만한 그림이 못 된다는 둥.... 속사정이야 어떻든, 작가는 아직 그림을 팔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림이 썩는다고? 이 작가의 말인즉슨, 그림은 계란 노른자로 그렸는데, 아무래도 계란으로 그렸으니 철따라 곰팡이가 슬기도 하고 갈라지거나 변색이 되기도 해서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그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른바 ‘삭는 작품, 삭는 미술’이었다.

 

작가의 설명을 듣고 보니 수긍이 갔다. 어느 순간 현대 미술이 갖고 있는 모순이랄까, 현대 미술관과 미술시장이 통제하는 욕망의 실체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아무리 예술적 가치, 상품 가치가 높다고 하더라도 썩기를 자처하는 생태주의적 작품은 미술관에 들어오기도, 시장에서 팔리기도 어렵다는. 삭는 미술이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이주연의 마음속으로 쿵, 하고 내려앉던 순간이었다.

 

“미술관과 미술 시장은 서로 다른 제도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 가치가 변하거나 사라지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닮아 있습니다. 지속되길 바라는 욕망 앞에서 두 제도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요.”

 

존재의 분해와 변화, 순환의 개념을 담은 작품을 중심으로 현대 미술관의 보존 중심 제도와 인간 중심적 사고를 되묻는 국립현대미술관(MMCA)의 기획전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가 지난달 30일 개막돼 5월3일까지 서울 종로 MMCA 서울관 제6·7전시실과 전시마당에서 열린다.

 

전시를 기획한 이 학예연구사는 “변화하는 물질에 대한 관심, 그리고 미술 제도를 이루는 관념 자체가 이제는 바뀔 수 있지 않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전시가 시작됐다”며 “생산·소비·축적의 흐름에서 벗어나, 공유와 순환이 가능한 방식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시장 입구의 왼쪽에서 관객을 처음 맞는 작품은 전시의 문제의식을 던져준 작품 가운데 하나인 이은재 작가의 <이제 근대 모서리를 닦아라-서문>. 나무 패널에 달걀노른자를 한 겹 한 겹 쌓아 올렸고, 패널마다 다른 달걀을 써서 노란색이어도 조금씩 다르다. 노른자로 만들다 보니 쉽게 갈라지고 바래지기도 한다.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그림이라는 매체의 한계와, 그럼에도 붓질을 계속해야 하는 작가의 소명, 그 사이에 명멸하는 미적 경험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할지도.

 

아사드 라자, ‘흡수’, 2020.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입구의 오른편에 들어서면 하얗게 정돈된 미술관 바닥 대신 비옥한 퇴비 같은 흙밭이 맞는다. 심지어 한 사람이 쇠스랑이나 삽으로 흙밭을 일구고 있다. 뉴욕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사드 라자의 작품 <흡수>이다. 작가는 닭 뼈와 소나무 잎, 커피 찌꺼기, 택배 상자 등 서울에서 나온 부산물과 재료를 사용해 퇴비 흙을 만들었다. 관람객들은 흙을 밟고 지나가면서 원하는 만큼 흙을 가져갈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존재들이 갖는 분해의 공통성을 드러내는 한편, 흙이 특정 이념이나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와 연결된 존재임을 강조한다.

 

지역 생태계와 환경에 초점을 맞춘 참여형 설치 미술을 선보인 라자는 이날 현장에서 “대부분의 작품은 전시가 열리기 전 제작이 끝나지만 이 작품은 전시 기간 내내 작업이 계속 된다”고 말했다.

 

전시는 이은재 작가의 <이제 근대 모서리를 닦아라-서문>과 아사드 라자의 <흡수>를 ‘서막’으로 해, 제1막 ‘되어가는 시간’, ‘막간’, 2막 ‘함께 만드는 풍경’ 등 모두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이 작가를 비롯해 고사리, 유코 모리, 아사드 라자 등 국내외 작가 15인(팀)의 회화, 조각, 설치 작품 등 50여 점을 선보인다.

 

제1막 ‘되어가는 시간’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삭아가는 작품으로 이루어진다. 그림이란 지질학적 시간 속에 끊임없이 변하는 안료가 잠시 머무르는 장소일 뿐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이은경의 에그 템페라 <그글피>, 해변의 잔해들로 제작해 작고 취약한 존재들이야말로 아름다움일 수 있다는 것을 환기시키는 세실리아 비쿠냐의 <프레카리오스>, 뜨개질로 만든 ‘향로’에 향을 피운 뒤 춤추는 연기의 움직임을 관찰하게 만드는 여다함의 <향연>, 좁아지는 통로 끝에 끝없는 동굴 같은 이미지로 대지와 하나되는 듯한 경험을 주는 델시 모렐로스의 <엘 오스쿠로 데 아바호>, 베어진 목재와 폐기된 목재를 통해 죽음이 이미 깃든 삶을 깨닫게 하는 김방주의 <벌목과 불> 등등.

 

유코 모리, ‘분해’, 2025.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들 가운데 인상적인 작품은 썩어가는 과일에서 비롯된 에너지로 빛을 밝히고 연주를 이어가는 ‘사건’을 형상화한 유코 모리의 <분해>. 작품은 죽은 사람의 몸이 아홉 단계로 변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일본 전통 불화 <구상도>에서 출발했는데, 일본의 스님들은 이 그림을 보면서 육신에 대한 집착을 떨쳐 냈다고 한다. 인간과 존재의 필멸성을 환기하는 한편, 서로 다른 형태로 이어지는 에너지의 흐름과 순환을 감각하게 한다. 성장과 생산 중심의 현대 사회에서 잊혀진 분해(썩음)의 생태학적·철학적 가치를 재조명한 농업사회학자 후지하라 다쓰시의 주장이 떠오를지도.

 

“그들은 ‘분해’ 활동을 영위하고 있다. 줍는다는 작용은 인류의 근원적인 작용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경제사 속에서는 실로 상업 종사자이지만, 지구 역사 속에서는 분명히 분해자다. 인간과 그 인간들의 서식처인 지구가 폐기물에 매몰당하지 않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존재이다.” (‘분해의 철학’, 217쪽)

 

전환의 준비를 상징하는 ‘막간’은 서울관 건물의 중정에 풀을 뭉쳐 만든 고사리의 <초사람>과, 흙을 다져 만든 김주리의 <물산>이 펼쳐진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을 나며 작품은 서서히 형태를 잃어가고, 작품이 허물어진 자리에 새싹이 움트며 소멸에서 생성으로 관객을 이끌 것이다.

 

댄 리, ‘목격자’, 2025.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2막 ‘함께 만드는 풍경’에서는 인간이 아닌 다양한 존재들이 호흡하며 만들어내는 다양한 풍경을 펼쳐 보여준다. 빛바랜 천과 항아리, 마른 꽃, 곤충과 곰팡이 등 비인간 공동체를 전면에 내세워 애도와 죽음을 재조명한 브라질 출신 댄 리의 작품 <목격자>, 자연과 공존해온 고대 마야인의 지혜를 전하는 동시에 작품 가치를 지속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방식을 상상하게 하는 에드가 칼렐의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 분해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재료를 선보이는 네덜란드의 연구소 ‘미래 재료’와 한국의 아티스트 콜렉티브 그린레시팹의 ‘RE: Materials’ 등이 그것이다.

 

특히, 전시의 거의 끝자락에는 우뭇가사리 등 유기물 재료를 통해 ‘사회적 발효’라는 개념을 담고 있는 미술 컬렉티브 ‘라이스 브루잉 시스터즈 클럽’의 <채널링 하우스>이 자리한다. 역시 이번 전시의 모티브를 준 컬렉티브로, 자연에서 나온 작품들은 전시 이후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다양한 연계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전시 개막 직후 ‘작가와의 대화’가 이미 열렸고, 4월에는 가족 및 어린이 대상으로 ‘초사람 만들기’ 워크숍도 개최된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로 만든 지도인 ‘촉지도’를 제작해 작가들이 사용하는 재료를 촉각으로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배우 봉태규는 전시의 오디오 가이드에 재능기부로 참여했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동시대 환경 인식을 반영한 미술작품의 변화에 주목하고, 그 변화에 부응하는 급진적인 미술관의 모델을 상상하려는 시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장을 빠져 나올 즈음, 우리들은 죽음이나 분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고 묻는 작품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들을지도 모른다. 손상이나 실패가 아닌 존재의 본질적 조건의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이제 비인간 공동체들과 공존하고 자연의 순환에 참여할 수 있느냐고. 미술관 역시 이러한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