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평범한 숙박업소 객실 문이 열리는 순간, 현장은 이미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20대 남성들을 잇달아 죽음으로 몰아넣은 이른바 ‘수유동 연쇄 사망 사건’의 참혹한 당시 상황이 119 신고 녹취록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14일 CBS노컷뉴스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강북구 연쇄 사망 사건 119 신고 녹취록에 따르면, 지난 10일 오후 5시 39분께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 모텔 직원은 사색이 된 목소리로 구조를 요청했다. 소방 관계자가 “지금 전혀 숨을 안 쉬느냐”고 묻자, 신고자는 “숨을 안 쉬고 몸이 일단 굳어 있다”며 절망적인 상태를 전했다. 이어 “코나 이런 부분에 분비물이 다 뱉어 올라와 있다”는 구체적인 묘사는 독극물 혹은 약물 중독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마지막을 짐작게 했다.
이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된 남성은 20대 B씨. 전날 A씨와 함께 투숙했다가 그녀가 건넨 음료를 마신 뒤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비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달 29일에도 인근의 다른 모텔에서 20대 남성 C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신고자 역시 “가까이 가서 흔들어만 봤는데 몸이 굳어 있는 것 같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경찰 조사 결과, 20대 여성 A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남성 3명에게 벤조다이아제핀 계열의 약물을 섞은 음료를 마시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중 2명은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 1명은 천만다행으로 목숨을 건졌다.
A씨의 범행 수법은 잔혹했다. 자신이 처방받은 약물을 범행 도구로 삼았으며, 회차가 거듭될수록 약물 투여량을 늘려나갔다. 특히 2·3차 범행에서는 초기보다 무려 두 배 이상의 약물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단순한 ‘잠재우기’를 넘어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서울북부지법 최기원 영장전담 판사는 12일 “도망의 염려가 있다”며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의견 충돌이 있어 잠재우려고 했을 뿐, 사망할 줄은 몰랐다”는 취지로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범행의 반복성과 급격히 늘어난 약물 투여량에 주목하고 있다. 단순한 상해치사를 넘어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이번 수사의 핵심이다. 경찰은 압수한 휴대전화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과 프로파일링을 통해 범행 동기를 정밀 분석 중이다.
이번 사건은 낯선 이가 건네는 호의, 혹은 짧은 만남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특히 평범한 주거지 인근 숙박업소가 연쇄 범죄의 현장이 되었다는 점은 지역 주민들에게도 공포로 다가오고 있다.
경찰은 향후 A씨를 상대로 사이코패스 진단검사(PCL-R)를 실시하고, 범행의 잔혹성과 피해 규모를 고려해 신상 공개 여부도 적극 검토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