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에서 만난 임모(30)씨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김씨의 고향은 용인으로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가봤자 다른 사람과 비교당하고 잔소리만 들을 게 뻔해서다. 3년째 공무원 일반행정직을 준비 중이라는 임씨는 “공무원 준비 첫해 명절에 갔을 때 월급도 적고 들어가기 어려운 공무원 그만두고 중소기업 취업하라는 잔소리만 늘어놨다”며 “꼭 보란듯이 합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2년째 순경 공채에 도전 중이라는 김모(31)씨도 시험을 앞두고 있어 고향에 내려가지 않을 계획이다. 특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에 뛰어든 터라 취업에 성공하기 전에는 친척들 앞에 나타나는 것도 부담스럽다. 김씨는 “3월에 시험이 있어서 이번 설에는 아무래도 집에 못 갈 것 같다”며 “남은 한달간 집중해서 공부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청년 취업난이 장기화하며 명절에 귀향을 꺼리는 청년 세대가 늘어나는 모양새다. 높아지는 취업 문턱을 넘고자 스펙을 쌓거나 공부를 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한 탓이다.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의 취업 관련 질문 공세도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해 취업플랫폼 캐치가 Z세대 취준생 1925명을 대상으로 추석 연휴 계획에 대해 조사한 결과 45%가 가족 모임에 참석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취업 준비로 바빠서(30%)’였다. 이어 ‘휴식을 취하고 싶어서’가 20%로 뒤를 이었고, ‘아르바이트·인턴’이 10%를 차지했다.
가장 듣기 싫은 명절 잔소리로는 ‘취업은 언제 할 거니’가 38%로 가장 높았다. 이어 ‘살이 좀 쪘다’(16%), ‘누구는 벌써 취업했다더라’(14%)가 뒤를 이었다. ‘졸업은 언제 하니’(9%), ‘그 과 취업은 잘되니’(8%), ‘눈을 좀 낮추는 게 어때’(8%), ‘공무원 준비해 보지 그래’(5%) 등도 상위권에 올랐다. 사실상 ‘취업 잔소리’가 70% 이상인 셈이다.
설 명절 연휴 기간임에도 학원가는 공시생들로 북적였다. 가성비가 좋아 공시생들이 주로 찾는 이른바 ‘공시뷔페’도 점심을 해결하려는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지만 음식 먹는 소리 외에 어떤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접시 한가득 가져온 음식을 삼키는 공시생들의 눈은 동영상 강의나 교재에 고정돼 있었다. 한 공시생은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1분1초도 아깝다”고 말한 뒤 급하게 사라졌다.
경찰공무원 학원 강사인 강해준(42)씨는 “명절에도 고향에 안 가고 남아서 공부하는 학생이 많다. 학원도 학생들을 위해 강의는 안 하지만 자습실을 제공한다”며 “명절에도 공부하느라 우울하겠지만 꼭 합격해서 유종의미를 거두길 바란다”고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