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뮌헨서 25만명 ‘이란 정권교체’ 외쳐…망명 왕세자 팔레비 존재감 부각

이란의 축출된 왕세자 레자 팔레비(65)가 대규모 해외 이란인 시위를 추동하면서,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해외 여론의 ‘얼굴’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다만 왕정복고를 둘러싼 정당성 논란과 이란 국내의 취약한 조직 기반 탓에 실제 집권 가능성에는 회의적 시각이 제기된다.

 

14일(현지시간) 독일 뮌헨 테레지엔비제 광장에는 이란의 신정체제 종식을 촉구하는 군중이 대거 모였다. 현지 경찰은 참가 규모가 약 25만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시위대는 “정권 교체”를 연호하며 1979년 이슬람혁명 이전의 ‘사자와 태양’ 문양이 들어간 옛 이란 국기를 흔들었고, 일부는 팔레비의 사진이 담긴 플래카드를 들고 그를 “왕”으로 부르기도 했다.

14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이란 내 반정부시위를 강경 유혈진압한 이슬람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 참여자의 규모는 약 25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AP연합

이번 집회는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로 열리도록 기획됐다. 팔레비는 뮌헨안보회의(MSC)가 열리는 시점에 맞춰 14일을 ‘세계 행동의 날’로 선포하고, 뮌헨을 비롯해 캐나다 토론토·미국 로스앤젤레스 등 주요 도시에서 거리 시위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해 왔다. 해외 시위대는 “국제사회의 방관이 이란 당국의 폭력을 키운다”며 제재 강화와 외교적 압박을 요구했다.

 

레자 팔레비는 1960년 10월31일 테헤란에서 태어나, 마지막 샤(황제·무하마드 레자 팔레비)의 장남으로서 사실상 후계자로 분류됐다. 1978년 팔레비가 미국 텍사스의 리스 공군기지에서 전투기 조종 훈련을 받던 중 이란 내 반정부 시위가 격화됐고, 그가 19세이던 이듬해 혁명으로 왕정이 붕괴하면서 귀국길이 막히며 망명 생활이 시작됐다.

 

팔레비는 혁명 직후 가족과 함께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신변 위협 속에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980년 부친이 이집트 카이로에서 사망하자, 팔레비는 망명지에서 스스로를 ‘레자 샤 2세’로 칭하며 왕위 계승을 선언했고, 이후 미국을 거점으로 반(反)이슬람공화국 활동을 이어왔다.

 

최근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고 당국의 유혈 진압이 이어지는 가운데 팔레비가 반체제의 상징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그의 ‘집권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 호주 공영 ABC방송은 팔레비가 “(이란의) 체제 전환”과 “국민투표”를 강조하며 ‘과도기적 조정자’를 자처하고 있지만, 이란 국내에서 확인되는 조직 기반이 뚜렷하지 않아 실제 권력 구도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고 평가했다.

 

왕정 복고를 둘러싼 정당성 논란도 팔레비에게는 부담으로 꼽힌다. 미 시사전문매체 타임지는 왕정 시절 비밀경찰 등을 통한 탄압과 1979년 혁명을 촉발한 부패·불평등 심화 등으로 이란 국민 중 상당수가 부정적 기억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또 48년 가까운 망명 생활로 국내 정치 지형에서 ‘이방인’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그를 집권시키기 위한 외부 군사개입이 이뤄질 경우 오히려 반정부 진영에 역풍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