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1만보 걸었는데 심장이”…50대의 후회, ‘속도’가 생사 갈랐다

영국 42만명 14년 추적 결과…시속 6.4㎞ 이상 걸어야 부정맥 43% 예방
느긋한 산책, 심혈관 보호 효과 미미해…체질량지수·염증 수치 관리가 ‘핵심’
연간 3만명 사망하는 ‘심장질환’ 경고 “숨 살짝 차고 땀나는 인터벌 실천해야”

14일 오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심혈관센터 대기실. 진료실을 빠져나온 최모(55) 씨의 손에는 부정맥 약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건강을 챙기겠다고 매일 동네 공원을 만보씩 걸었는데 심방세동 진단을 받았다”며 “산책하듯 천천히 걸은 게 문제일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전문의들은 걸음 수에만 집착하는 느린 산책보다 숨이 약간 찰 정도의 빠른 걷기가 심장질환 예방에 훨씬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pixabay

최씨처럼 걸음 수에만 집착하다 정작 심장 건강을 놓치는 환자들이 병원을 채우고 있다. 심장 전문의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걷기의 핵심은 ‘만보’라는 숫자가 아니라 ‘속도’였다. 땀이 나지 않는 유유자적한 걸음만으로는 심장을 노리는 질병의 화살을 온전히 막아낼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42만명 데이터가 증명한 ‘속도의 마법’

 

영국 의학 저널 BMJ 산하 학술지 ‘하트(Heart)’에 실린 연구는 이 잔인한 현실을 숫자로 증명한다. 연구진이 ‘UK 바이오뱅크’에 등록된 42만925명의 데이터를 14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시속 6.4㎞ 이상의 빠르고 숨찬 걷기가 느린 산책보다 부정맥 발생 위험을 43%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빠른 보행이 체질량지수(BMI)를 조절하고 체내 전신 염증 수치를 떨어뜨려 심장 리듬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국가데이터처 2023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암에 이어 심장질환이 사망 원인 2위로 나타났다. 통계표 기준으로 추산할 때 심장질환 사망자는 약 3만3000명 수준으로 파악된다.

 

단순히 걷는 속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도 돌연사로 이어지는 치명적 심장 리듬 이상을 절반 가까이 막아낼 수 있다는 의미다.

 

내 몸 안의 염증 청소: 왜 빨리 걸어야 할까? 제미나이 생성 그래픽

◆심장 파괴하는 염증, 땀방울이 태운다

 

왜 속도를 높여야 할까. 한 대학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그 비밀이 ‘대사 지표’에 있다고 짚었다.

 

그는 “빠르게 걷는 행위 자체가 체질량지수(BMI)를 직접적으로 낮추고, 혈관 벽을 망가뜨리는 전신 염증 수치를 떨어뜨린다”며 “천천히 걷는 산책 수준으로는 심장 근육에 필요한 과부하를 주지 못해 보호 효과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연구진은 빠른 걷기가 주는 예방 효과의 약 35%가 이 같은 대사 요인 개선과 염증 감소에서 온다고 확인했다. 비만이 아니거나, 고혈압 등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일수록 숨 가쁘게 걷는 습관의 효과는 배로 뛰었다.

 

◆병원비 수천만원 아끼는 ‘인터벌 걷기’

 

미국심장협회(AHA)와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기준은 주 150분의 ‘중강도 신체활동’이다. 중강도란 “옆 사람과 대화는 가능하지만 숨이 살짝 차오르는 정도”를 말한다.

 

시속 6.4㎞ 이상의 빠르고 숨 가쁜 걷기는 체내 염증 수치를 낮추고 체질량지수(BMI)를 개선해 심방세동 등 치명적인 부정맥 위험을 43%나 떨어뜨린다. pixabay

처음부터 1시간 내내 무리해서 달릴 필요는 없다. 평소 걷는 속도를 유지하다가 3~5분 정도 보폭을 10㎝ 넓히고 팔을 크게 흔들며 속도를 바짝 끌어올리는 ‘인터벌 걷기’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빼고 걸음을 재촉해보자. 이마에 맺힌 작은 땀방울 하나가 10년 뒤 당신의 묵직한 병원비를 아껴주고, 돌연사의 공포에서 일상을 지켜내는 가장 든든한 보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