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2시 서울 동작구의 한 햄버거 가게.
다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처음 만난 이들은 “혹시 당근 감튀인가요?”, “홍님 맞으시죠?”라고 물으며 서로를 확인했다.
30대 중반 개그맨 지망생부터 20대 후반 취업 준비생에 기자까지 참석자는 모두 5명. 서울 관악구·서초구·영등포구는 물론 경기 구리시에 거주하는 이들은 사는 곳도 나이도 제각각이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감자튀김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명절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깔려 있다.
특히 긴 명절 연휴 동안 부담 없는 비용으로 시간을 보내기에도 더없이 적당한 선택지였다.
홍모(37)씨는 “지금 백수라 솔직히 잔소리 듣기 싫어서 본가에 못 내려가고 있다”며 “연휴는 긴데 딱히 할 게 없어서 나와 봤다”고 말했다.
서모(28)씨 역시 “이번 설에는 할머니댁에 가지 않기로 했다”면서 “웹소설 작가를 준비 중인데 아직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 야간 알바를 알아보던 중 재밌을 것 같아 참여했다”고 모임 신청 이유를 밝혔다.
“일단 감튀 먼저 시킬까요?”
“저 대식가라 많이 먹어요. 혼자 2~3개도 충분해요!”
이날 5명이 먹은 감자튀김만 총 4만원어치. 갓 튀겨 나온 뜨끈한 감자튀김을 한데 모아 나눠 먹다 보니 금세 친한 친구처럼 대화가 이어졌다.
중고거래·지역 기반 커뮤니티 플랫폼을 통해 감자튀김을 함께 먹는 이른바 ‘감튀모임’이 2030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참여 열기는 설 연휴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취업 고민부터 감자튀김 취향, 좋아하는 아이돌 이야기까지 대화 주제는 가볍고 소소했다.
“감자튀김은 나초 치즈 소스에 찍어 먹어야 많이 먹을 수 있어요.”
“저는 양념 감자파예요. 두툼하고 좀 시즈닝 된 게 계속 먹기 좋더라고요.”
인간관계에서도 ‘가볍고 부담 없는 연결’을 선호하는 2030세대에게 감튀모임은 또 하나의 명절 도피처가 되고 있다.
30대 후반의 한 참석자는 “명절에 집에 있으면 괜히 비교도 되고 말도 많아진다”며 “집 대신 이런 모임에 나오니 연휴가 진짜 휴일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2030이 감튀모임으로 명절을 재해석한다면 4060세대 역시 다른 방식으로 연휴를 보내고 있다.
한때는 가족을 한자리에 모아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해먹는 것이 명절의 ‘정석’처럼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취미생활을 즐기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연휴를 보내는 ‘신중년’이 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에서 만난 60대 이경주씨는 이번 설 연휴 기간 본가인 오목교에서 행주대교, 팔당대교까지 이어지는 60~100㎞ 구간을 매일 자전거로 달리고 있다.
이씨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명절이면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는 게 당연했다”며 “요즘은 가족과 하루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머지는 각자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라이딩이 유일한 취미인 50대 김태균씨도 설 연휴가 시작된 주말 당일치기로 본가를 다녀온 뒤 매일 자전거를 타고 있다. 남은 연휴 역시 라이딩으로 채울 계획이다.
김씨는 “요즘은 제사를 지내지 않다 보니 어머니께서도 설 당일에 오지 말고 그 전에 와서 외식만 하고 가라고 하신다”며 “내게 명절은 자전거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는 다음 명절에는 지방 국토 종주를 계획 중이라고 덧붙였다.
설 연휴를 활용해 여행을 떠나는 신중년도 늘고 있다. 부부 동반 해외여행이나 지인들과 곗돈을 모아 단체 관광을 다녀오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지난해 설 명절 70대 이상 여행객은 1만여명으로, 직전 설보다 15% 증가했다. 50대(47만4000여명)와 60대(3만1000여명)도 각각 14%, 7% 늘었다.
3박 4일 일정으로 베트남 여행을 떠난 이모(64)씨는 “자식들도 다 컸고 평소에도 자주 만나기 때문에 명절에 꼭 모여야 한다는 부담은 줄었다”며 “올해 처음으로 연휴를 활용해 여행을 계획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