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미국과 체결한 관세합의에서 약속했던 5500억달러 대미 투자에 첫발을 내디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7일 “일본과의 초대형 무역합의가 막 출범했다”면서 360억달러 규모의 3대 프로젝트를 공식 발표했다. 투자처는 텍사스주의 석유·가스와 오하이오주의 발전, 조지아주의 핵심광물사업으로 정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의 투자이행을 빌미 삼아 한국에 더 센 압박을 가할 텐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일본의 투자에는 미국의 에너지시장을 선점하고 첨단전략산업에 꼭 필요한 핵심광물도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중요광물, 에너지, 인공지능(AI)·데이터 센터 등 중요한 경제안보 전략 분야에서 미·일이 공급망을 구축해 유대를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 분야는 일본 기업이 강점을 지닌 만큼 자국 산업 키우기에도 보탬이 될 게 틀림없다. 일본은 재정 투입 없이 외환보유액 운용수익에 국책은행 대출과 보증을 더하는 방식으로 투자액을 충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이 이렇게 앞서 나가는 사이 한국은 외려 뒷걸음질 치고 있으니 한숨이 절로 난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말 한국 국회의 대미투자특별법 입법 지연을 콕 집어 25% 관세인상을 압박했는데 아직 아무 진전이 없다. 미국은 관세인상 방침을 철회하지도, 관세인상을 관보에 게재하지도 않은 채 한국의 동향을 주시하는 형국이다. 국회는 부랴부랴 여야 합의로 대미투자특별법을 다룰 특위를 구성했지만, 고질적인 정쟁 탓에 첫 회의부터 파행을 겪었다. 트럼프발 관세 폭탄이 진짜 현실화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양국 간 후속협상도 오리무중이다. 산업통상부 장관과 통상교섭본부장, 외교부 장관이 차례로 미 워싱턴으로 날아가 협의를 이어갔지만, 빈손으로 귀국했다. 그런데 장관마다 딴소리가 나온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대미투자특별법이 통과될 경우 관세 재인상이 정상화될 것”이라고 했고, 조현 외교부 장관은 “미국이 비관세 장벽 관련 협상에서 진척이 없을 경우 관세를 인상하려 한다”고 전했다. 미국의 우격다짐이 지나친 것은 사실이지만, 중구난방식 대응은 화를 키울 게 뻔하다. 정부는 부처 간 혼선을 줄이고 일관된 전략과 실효적 대처로 국익방어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여야도 조속히 이견을 조율해 입법을 마무리해야 한다. 미적대다가 주요 투자처를 일본 등에 내주고 상업적 합리성이 없는 분야의 투자를 떠안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