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산업현장은 DX(디지털 대전환·Digital Transformation)를 넘어 AX(인공지능 대전환·AI Transformation)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AX는 기업과 조직, 산업이 인공지능을 활용해 업무, 제품, 서비스, 조직 문화, 비즈니스 모델 등 비즈니스 전반을 혁신하는 과정을 뜻한다. 이러한 AX 물결 속에서 기업들은 AI 기술을 활용해 업무 전반을 혁신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직면해 있다. 기업마다 ‘AI 전략’이 난무하고, 임원들은 경쟁사보다 빨리 AI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AI 도입하면 생산성이 오를 것이다.”
“데이터가 많으면 답은 저절로 나온다.”
박종성/세종/2만3000원
“사람이 개입하지 않을수록 시스템은 더 완벽해진다.”
오늘날 기업 회의실에서 흔히 들리는 말들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많은 기업의 이러한 혁신은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디지털 전환과 AI 프로젝트 상당수가 조용히 중단되거나, 실패를 인정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혁신은 넘쳐나는 데 성공사례는 좀처럼 늘지 않는다. 이 책은 1900년대 전기 혁명부터 2020년대 생성형 AI까지의 산업사를 돌아보며 글로벌 기업들의 25가지 혁신 실패 사례를 통해 기술 앞에서 우리가 빠지기 쉬운 착각의 본질을 해부한다.
“당초 목표는 분당 60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었지만, 첫 주에 고작 60대를 생산했고, 그나마 최종 검사 합격률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기록은 당시 얼마나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는지 짐작하게 한다.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최첨단 로봇 팔은 용접점을 제대로 찾지 못해 엉뚱한 곳에 불꽃을 튀기거나 차체를 ‘찢어’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자동 도장 시스템의 스프레이 노즐은 수시로 고장 났고, 급기야 자동차가 아닌 주변 다른 로봇이나 설비에 페인트를 분무하는 황당한 장면을 연출했다. 로봇들이 서로의 몸체에 페인트를 칠하거나 용접 불꽃을 엉뚱한 곳에 튀겼다.”(46쪽)
1980년대, 미국 자동차산업의 자존심이던 GM의 혁신 실패 사례다. GM이 그린 미래는 로봇이 자동차를 완벽하게 조립하는 완전 자동화 공장이었다. GM은 자동화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생산성은 기대만큼 오르지 않았다. 고도로 자동화된 일부 라인은 결국 다시 인간 작업자 중심으로 재조립됐다.
이 장면은 21세기에도 반복된다. 부동산 플랫폼 ‘질로우’는 AI로 집값을 예측하고, 클릭 한 번으로 집을 사고파는 세상을 꿈꿨다.
방대한 데이터와 정교한 알고리즘을 갖춘 질로우라면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알고리즘은 집의 면적과 방 개수는 계산할 수 있어도, 그 집에 고양이 20마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집을 수리하고 되파는 과정은 코드처럼 확장되지 않았다.
사람과 자재, 지역 노동시장이라는 물리적 제약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질로우는 결국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며 사업을 접었다. 영국 BBC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모든 제작·편집·아카이빙을 하나의 완벽한 디지털 플랫폼으로 통합하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남은 것은 기존 시스템보다 느리고 불편한 플랫폼, 전체 직원 중 극소수만 사용하는 시스템, 그리고 1700억원이 넘는 손실이었다.
저자는 이렇듯 겉으로는 서로 다른 산업, 다른 시대의 사건처럼 보이지만, 혁신이 번번이 좌초되는 이유는 기술 부족이나 실행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쉽게 믿어온 공통된 사고방식, 즉 ‘메타 착각’(자기 생각·판단·능력을 객관적으로 알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잘못 이해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며 설명한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도구의 혁신이 곧 생산성의 혁신이다 △정답은 거대한 데이터와 복잡한 시스템에 있다 △인간의 개입은 최소화해야 한다 △멋진 제품과 서비스는 스스로 시장을 창출한다 △리더가 횃불과 채찍을 들면 혁신은 따라온다 등 조직이나 리더가 빠져들기 쉬운 다섯 가지 핵심 착각을 제시한다. 이 착각들이 혁신을 가로막는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강력한 함정으로, 수많은 조직이 같은 실패를 반복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으로 작동해 왔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책 후반부에서 ‘사전부검(pre-mortem)’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가정한 뒤 그 원인을 미리 상상해 보는 방식이다. 이는 리스크를 가시화하고 조직 내부의 침묵을 깨는 장치다. 저자는 “기술이 아무리 빠르게 발전에도 사람과 조직의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혁신이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며 “진짜 혁신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순간이 아니라 우리가 오랫동안 믿어온 착각을 내려놓는 순간 시작된다”고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