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는다고 촛불을 훔칠 수는 없습니다.”
12·3 비상계엄을 주도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19일 무기징역을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 지귀연 부장판사는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라는 윤 전 대통령 측 주장에 대해 “이유나 명분을 목적과 혼동한 주장”이라며 이 서양 속담을 인용했다. 지 부장판사는 재판 시작부터 주문을 읽기까지 걸린 한 시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모습이었다. 평소 공판 때 모습과 달리 한 차례도 미소를 보이지 않았다.
지 부장판사는 지난해 3월 7일 윤 전 대통령의 구속취소 청구 인용을 도화선으로 정치권 공세를 한 몸으로 받았다. 재판부는 구속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해 검찰이 구속기간 만료 후에 윤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고 판단했다. 그간 법원 내부에선 영장실질심사에 의해 수사 서류가 법원에 머문 기간만큼 구속이 늘어나는 기간을 따질 때 날로 계산하는 게 통상적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실무 관행을 벗어난 결정”이라는 거센 비판이 터져 나왔다. 이는 재판부에 대한 여당의 공격과 의혹 제기로 이어졌다.
민주당은 지난해 5월 지 부장판사가 룸살롱(유흥주점)에서 직무 관련자들에게 접대받았다는 의혹을 꺼내 들었다. 해당 의혹은 친여 시민단체의 고발로 공수처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은 지 부장판사가 직무 관련성이 없는 후배 변호사 2명과 횟집에서 만나 개방된 홀에서 2시간가량 1차 저녁 식사와 음주를 했으며 음식값을 직접 결제했다고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또한 2차로 간 술집은 큰 홀에 노래를 부르는 라이브 시설을 갖춘 곳으로 룸살롱 같은 곳은 아니었고, 지 부장판사는 술 한두 잔을 마시고 먼저 일어났다고 대법원은 전했다. 외부위원들로 구성된 대법원 감사위원회는 “현재로선 지 부장판사에게 징계 사유가 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심의 결과를 발표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피고인 측 발언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고, 때로는 농담 섞인 표현으로 소송을 지휘한 지 부장판사의 진행 방식도 주목받았다. 지 부장판사는 지난달 9일 열린 공판에선 김 전 장관 측과 특검팀 간 증거조사 절차를 둘러싼 실랑이가 벌어지자 변호인 측에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징징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 부장판사는 이날 선고를 끝으로 법관 정기인사에 따라 23일 서울북부지법으로 자리를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