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우리] 李 대통령 3·1절 기념사가 궁금하다

트럼프 시대 ‘한·일 협력’은 과제
과거사 불씨 덮으면 언제든 발화
日에 진정한 반성·역사책임 물어야
품격 있고 스마트한 외교전략 기대

작년 말 이재명 대통령은 역사연구기관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환단고기에 관해 그저 묻기만 했는데도 역사학계와 언론에서 고대사 논란이 일어났다. 그만큼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우리 역사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사실 근대사 논쟁은 더 심각하다. 식민사관이니, 뉴라이트니, 식민지근대화론이니 하는 일본프레임과 반일·친일 대립 논쟁만 있다. 근대사 문제는 한·일 관계의 급소이기도 하다.

19세기 조선은 요즘 용어로 ‘실패국가’였다. 150년 전 조선은 영토를 외국의 전쟁터로 만들었다. 그 30년 후 대한제국은 일본에 주권을 잃었다. 한국인들은 일제강점하에 고초를 겪고 젊은이들은 죽음으로 항거했다. 안중근 의사는 겨우 30세에 순국했다. 필자는 24세의 윤봉길 의사가 한 살 아들에게 남긴 절절한 편지를 보았다. 젊은 시인들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울었다.” 국민의 고난과 희생은 누구의 책임인가?

이현주 전 오사카 총영사

국가는 그 행위 또는 부작위로 인한 국민의 피해에 책임을 진다. 1988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계 미국인들을 집단수용소에 억류했던 잘못을 사과하고 배상했다. 조선과 대한제국을 계승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국민의 고난과 희생에 관한 역사책임도 계승한다. 그러나 해방 후 ‘돌아온 국가’인 대한민국은 국민의 피해를 제때 구제하지도 않았다. 한국정부와 국민은 일본의 역사 반성과 사과를 요구해 왔다. 역사학은 투쟁이 되고 외교는 사과를 요구하는 일이 되었다.



그런데 안보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북한 비핵화 목표는 사라지고 ‘현실적 접근론’이 등장한다. 작년 말 발표된 미국의 국방전략은 한국에 대북 방위책임을 떠넘겼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9세기적 각자도생의 시대를 열었다. 한국과 일본의 첫 번째 각자도생 외교 과제는 서로 동병상련하며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월 이 대통령의 일본 방문과 한·일 정상회담은 시의적절했다. 그러나 과거사 불씨를 그냥 덮으면 다시 발화할 수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이 대통령의 방일 직후 2월8일 총선에서 압승하여 고이즈미와 아베의 반열에 올랐다. 강해진 다카이치 총리가 우호적 한일관계 기조를 유지할지 여부는 2월22일 ‘다케시마(독도)의 날’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그 후에도 교과서 검증, 야스쿠니신사 춘계예대제 참배로 이어지는 시험대가 있다. 3월 중순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는 다카이치 총리를 맞이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도 달라질 것이다. 트럼프가 중국을 방문하는 4월까지는 다카이치의 외교시간이다. 반대로 이 대통령에게는 북한 정세도 더해져 안팎으로 부담의 시간이다. 한국 내의 불씨는 일본에게 이용당하기 십상이다. 북한문제는 늘 일본의 외교조커다. 다카이치 총리는 선거 전의 ‘순박한’ 미소가 사라지고 오히려 강한 결기를 드러내는 얼굴로 변했다.

한국은 이 시점에서 일본에 대못을 박아야 한다. 한국이 먼저 자기 역사를 반성한다면, 자국민에게 사과한 적이 없는 일본의 역사책임이 더 부각되는 도덕적 대못박기가 될 수 있다. 대통령만이 국가를 대표해서 ‘과거국가’가 국민에게 입힌 피해를 사과할 수 있는 권위가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작년 6월25일 한국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소록도를 방문하여 한센병 환자들을 위로했다. 지난 1월 일본 방문 중 오사카에서는 제주 4·3사건 희생자들과 재일동포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참 보기 좋았다.

이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맞는 3·1절 기념사에서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반성을 촉구하면서) ‘19세기 말 이후 근대시대에 국민의 안전을 보호하지 못한 국가의 역사적 책임’을 사과하고, 앞으로 국가가 국민 보호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다짐하면 어떨까? 그것은 국내의 근대사 논쟁을 역사학 본질에 충실한 논의로 이끌고, 일본과는 더 품격 있게 과거사문제를 논의할 수 있게 하는 불씨가 될 것이다. 외교는 정치지도자의 ‘말’을 해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대통령은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말’로 오히려 대중국 외교의 문을 여는 스마트한 외교감각을 보여주었다. 이번 3·1절에 이 대통령의 외교전략적 개인기를 다시 기대해 본다.

 

이현주 전 오사카 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