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서울의 한 견본주택. 모형도 앞에서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은 의외로 가장 작은 전용면적 59㎡ 유닛이다.
“전용 84㎡ 18억원대”라는 공고문 앞에서 한 신혼부부가 휴대폰 계산기를 두드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방 하나 포기하고 거실 좀 줄이면 5억원이 남는데, 굳이 무리할 필요 있을까?” 결국 이들의 상담 번호표는 59㎡ 창구로 향했다. 요즘 서울 분양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속형 풍경이다.
◆평면 아닌 ‘상환가능액’이 당락 결정
최근 분양 시장에서 수요자들이 가장 공들여 살피는 것은 채광이나 팬트리 구조가 아니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계산기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발표한 최근 자료에 따르면, 서울 민간 아파트의 3.3㎡당 평균 분양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실제 최근 분양을 진행한 마포구와 성북구 일대 주요 단지들을 보면, 전용 84㎡ 최고가는 13억~14억원을 훌쩍 넘긴 반면 같은 단지 59㎡는 8억~9억원대에 공급돼 약 5억원의 확연한 격차를 보였다. 대출 규제를 적용하면 상당한 수준의 자기자본 없이는 진입 장벽이 높다.
이 차이는 단순한 면적 문제를 넘어, 매월 가계가 감당해야 할 실질적인 원리금 상환 부담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선택의 기준은 ‘국민평형’이라는 상징성이 아닌, 가계가 버틸 수 있는 실질적 상환 한도선으로 이동했다.
◆매매 시장도 소형으로 기운 ‘무게추’
한국부동산원 주택가격동향 등에 따르면 매매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된다. 전용 60㎡ 이하 소형 아파트는 일부 기간 동안 중대형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집값이 오르자 진입 문턱이 낮은 소형으로 수요가 쏠린 결과다.
수요는 늘고 있지만 공급은 이를 온전히 뒷받침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공사비 부담이 큰 상황에서 가구당 단가가 낮은 소형 물량을 적극적으로 늘릴 유인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한 대형 건설사 분양 소장은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소형 평형을 공급해도 사업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수요 쏠림은 구조적인데 공급은 제자리걸음이니, 가격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시장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의미한다.
◆데이터가 말하는 ‘소형대세론’
구체적인 통계를 보면 변화는 더욱 명확하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서울 아파트 청약자 중 59.7%가 전용 60㎡ 이하 소형 평형을 선택하며 전체의 과반을 차지했다. 수도권 전체로 봐도 2023년 기준 소형 청약자 수가 중형(60~85㎡)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구조의 변화도 한몫한다. 국가데이터처 인구주택총조사(2023년 기준)에 따르면 국내 1~2인 가구 비중은 약 64%에 달하며, 평균 가구원 수는 2.19명까지 줄었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설계된 ‘전용 84㎡’가 시장의 절대 표준이던 공식이 점차 약화되는 분위기다.
◆‘국평’은 상징, 59㎡는 생존
84㎡는 여전히 누구나 선망하는 상징적인 면적이다. 하지만 지금 서울의 무주택자들에게 더 절실한 것은 체면이 아니라 주거의 지속 가능성이다.
퇴근길 모바일 뱅킹 앱을 열어 대출 한도를 확인하던 직장인 김모(36) 씨는 결국 59㎡ 청약을 결심했다. “거실이 조금 좁아지는 건 참을 수 있지만, 대출 이자 때문에 일상이 무너지는 건 감당할 자신이 없거든요.” 전용 면적 약 25㎡를 줄이면 초기 자금 부담을 수억원가량 덜 수 있다는 계산이다.
김 씨가 휴대폰 화면을 끄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서울의 밤, 소형 평형 선택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닌 치열한 생존 전략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