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명은 결코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되고, 다른 가치와 비교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사형제 폐지 법안에 명시한 문구다. 사형제 폐지를 꾸준히 주장하며 ‘생명의 절대적 가치’를 강조해 온 민주당이 ‘선택적 정의’ 논란에 휩싸였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1심 선고를 두고 당 지도부가 “사형이 마땅하다”는 취지의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놓으면서다. 평소 사형을 반인권적 형벌로 규정해 온 당의 기존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찰스 1세는 공개적으로 참수형 당해” 문제 제기
민주당 지도부는 19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무기징역 선고 직후 즉각 반발했다. 정청래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나라의 근간을 뒤흔든 내란 수괴에게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를 선고함으로써, 사법 정의를 흔들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내란범에게 사면을 금지하는 사면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 장관을 지낸 박범계 의원도 20일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의 법 감정에 비춰 매우 미흡한 판결”이라며 윤 전 대통령에게 사형이 선고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박 의원은 재판부가 내란죄로 처형당한 찰스 1세 전 영국 국왕 사례를 언급한 데 대해 “찰스 1세는 결국 공개적으로 참수형을 당했다. 왕도 처형당하는데 하물며 공화정의 대통령인들 (사형을 면하겠느냐)”이라고 말했다.
◆“사형 말고 답 없다”… 선거판 덮은 선명성 경쟁
무기징역 선고 직후 서울시장 선거 유력 후보인 민주당 소속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이 “윤 전 대통령 무기징역 선고는 시민의 뜻”이라고 페이스북에 밝히자, 당내 경쟁자인 박주민 의원은 “정 구청장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 사형 선고 말고는 답이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는 이 같은 민주당의 반응을 두고 “굉장히 웃긴다”고 했다.
실제로 정 대표(19·21대 국회)와 박범계 의원(19·20·21대 국회)은 ‘사형 폐지에 관한 특별법안’ 공동발의자로 나란히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대표적 사형제 폐지론자인 박주민 의원도 20대와 현 22대 국회에서 사형제 폐지 법안을 공동발의했다. 이들은 사형을 “반인권적이고 비인도적인 형벌”로 규정하며 이를 종신형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정치적 수사로 전락한 ‘사형’… 형벌 원칙도 정치 논리에
다만 민주당 내부에서도 실제 사형 집행보다는 ‘상징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박범계 의원 역시 “실제 사형 집행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기보다 사회적 경종을 울리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이를 두고 야당에서는 즉각 비판이 나왔다. 천 원내대표는 이날 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사형폐지론자가 ‘사형 안 준 것이 문제’라고 하는 건 진짜 이상한 모순”이라며 “우리는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이기에 무기징역이 사형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건 진짜 포퓰리즘”이라고 꼬집었다.
법조계 안팎에서도 정치적 실익에 따라 형벌 원칙이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계속된다. 한국은 1997년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사실상의 폐지국이다. 그럼에도 사형은 여전히 정치적 비난의 언어로 소비되고 있다. 민주당이 내세워 온 인권 가치와 엄벌론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번 논란은, 사형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이중적 태도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