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세 하락에 ‘베팅’ 인가?” vs “차익 실현인가?”
올해 들어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 랠리를 이어가고 있지만 외국인은 9조원 넘게 순매도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외국인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매수세를 강화하는 기관과 ‘불장의 꿈’을 안고 뛰어든 개미들이 메꾸고 있다. 그간 ‘외국인이 사면 오르고, 외국인이 팔면 하락 한다’는 주식시장 경구가 통할지, ‘개인이 사면 하락한다’는 역설을 뒤집고 새로운 추세가 만들어질지 주목된다.
◆올해 외국인 순매도(9조), 지난해(4조) 2배↑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올해 들어 이달 20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9조1560억원 순매도했다. 이는 외국인의 지난해 연간 코스피 순매도액(4조6550억원)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외국인은 코스피200선물시장에서도 올해 들어 3조7970억원 순매도했다. 코스피가 올해 들어 38% 급등하며 고공 행진한 가운데 외국인 투자자들은 대거 차익 실현에 나선 것이다.
외국인의 매도세는 대거 반도체주로 쏠렸다.
외국인은 올해 들어 삼성전자를 9조5540억원 순매도하며 가장 많이 팔았다. 삼성전자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59% 급등했다. 지난 19일에는 사상 처음 ‘19만전자’를 달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국인은 오히려 이를 차익 실현 기회로 여기고 대거 파는 모습이었다.
두 번째로 많이 판 종목은 SK하이닉스로 5조9720억원어치 팔았다.
이 밖에 로보틱스 모멘텀으로 연초 급등세를 보인 현대차(5조2940억원)도 세 번째로 많이 팔았다. 이어 SK스퀘어(6370억원), 현대모비스(6090억원), 현대글로비스(5420억원) 등 순이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 외국인이 코스피시장에서 매도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이는 코스피 추세적 하락에 대한 ‘베팅’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매도 대부분이 반도체주로 집중된 점을 볼 때 많이 오른 종목 비중을 줄이는 단기적인 리밸런싱(재조정) 과정으로 본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최근 증시 급등에도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지속되는 분위기다.
최근 한국투자증권은 반도체 기업 이익 급증을 근거로 올해 코스피 목표치를 기존 5650에서 7250으로 올려 잡았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증시 과열 우려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코스피 PBR(주가순자산비율)은 2배에 접근중인데, 1990년대 초, 2000년대 초, 2007∼2008년 이후 처음”이라며 “저평가가 해소됐다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지만, 밸류에이션(평가가치) 상승에 한계가 드러날 시점으로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 시설 투자 가속화도 변수로 거론된다.
DB금융투자도 AI 시설 투자 가속화가 소비 감소와 물가 상승 등을 이끌 수 있다며 올해 상반기 코스피 하단 전망치를 기존 4500포인트에서 4300포인트로 하향했다.
◆코스피 6000포인트 가능할까?
코스피 지수가 5800선을 돌파하면서 6000포인트도 눈 앞에 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주 인공지능(AI) 고평가 우려가 다시 부각되거나, 관련 기업의 실적이 시장 예상치를 밑돌 가능성, 증시가 사상 최고 수준에서 나올 수 있는 차익 실현 물량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AI 수익성 우려로 AI 관련주 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흐름 전환 가능성이 열리는 이벤트로 엔비디아 실적 발표가 중요하다”며 “핵심은 실적 숫자보다 가이던스와 GPM(매출총이익률) 등 수익성 지표 유지 여부로, 불확실성이 일부 완화되면 시장의 초점이 수익화 논란에서 성장 가시성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엔비디아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약 60% 늘어난 656억달러(약 95조원)로 추정된다.
3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는다면 증시가 추가 상승 동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법안은 지난 20일 여당 주도로 국회 법사위 소위를 통과했고, 24일 열리는 본회의에 상정될 가능성이 크다. 3차 상법 개정안 수혜주로는 자사주 비중이 높은 증권, 지주 업종이 꼽힌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 및 미국·이란 긴장 고조 등 불확실성 확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상호관세 위법판결에 이어 이란 관련 군사·외교 양면 노선 등 중간 선거를 앞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략상 글로벌 불확실성과 변동성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