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러시아대사관이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외벽에 게시한 뒤 우리 정부의 우려 전달에도 이를 철거하지 않으면서 외교적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해당 사안과 관련한 입장을 러시아 측에 전달하고 향후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22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주한러시아대사관은 서울 중구 소재 대사관 건물 외벽에 러시아어로 ‘승리는 우리의 것’이라는 의미의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게시했다. 이 표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에서 널리 사용된 구호로 알려져 있다. 다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4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문구가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을 연상시키며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외교부는 관련 사실을 인지한 뒤 주한러시아대사관 측에 해당 현수막이 한국 국민과 주재 외교단 사이에 불필요한 긴장을 조성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 그러나 러시아 측은 현재까지 현수막을 철거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이날 “우리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불법행위이며, 북한과 러시아간 군사협력은 유엔 헌장 및 안보리 결의의 명백한 위반이자 우리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인 만큼 중단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다”며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주한러시아대사관 건물 외벽 현수막 게시 및 주한러시아대사의 대외발언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러측에 전달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는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의 위대함을 잊지 않겠다”고 발언해 논란을 빚었다.
외교부는 이어 “향후 예정된 주한러시아대사관 측의 집회 등과 관련해서도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외교 공관의 불가침성을 규정한 ‘비엔나 협약’에 따라 우리 정부가 해당 현수막을 강제로 철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외교가에서는 주재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우려를 전달했음에도 외교 공관이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메시지를 유지하는 것은 외교 관례상 부적절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러 군사협력 문제를 둘러싸고 한·러 관계가 경색된 상황이 이번 논란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