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위험 가습기 돌려주러 간 날…앞 손님은 ‘한정판 컵’을 물었다

스타벅스, 증정품 가습기 자발적 리콜
무상 택배 수거와 매장 반납 중 선택
‘리유저블 컵’ 이벤트에 주문 묻는 손님들
중고 거래 플랫폼에는 되파는 글 올라와

지난 21일 낮 12시10분쯤, 경기도의 한 스타벅스 매장 카운터 앞에 선 기자의 품에는 종이상자가 들려 있었다. 상자 안에는 지난해 12월 ‘e-프리퀀시’ 이벤트 증정품으로 지급됐다가 국소 화재 논란으로 자발적 리콜 대상이 된 가습기가 담겼다. 머리맡에서 수증기를 뿜으며 쾌적함을 돕던 제품이 어느 날 갑자기 화재 위험이 제기된 ‘반납 대상’으로 전락했다.

 

지난 21일 스타벅스의 ‘e-프리퀀시’ 증정품이었던 가습기를 반납하고 기자가 받은 ‘리콜 접수 확인증’. 김동환 기자

 

스타벅스는 지난 2일부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무상 택배 가습기 수거를 진행 중이다. 앱에 접속해 수량과 주소, 연락처 등을 입력하면 택배 기사가 방문해 수거해가는 방식이다. 한 상자에 최대 24개까지 담아 보낼 수 있으며, 상자 겉면에 ‘가습기’라고 표기하기만 하면 된다. 이와 별개로 매장을 직접 방문해 가습기를 반납할 수도 있다.

 

매장에는 리콜 관련 안내문이 비치됐다. 안내문의 QR코드를 인식하자 이름과 반납 수량을 입력하는 화면이 나타났고, 접수를 마친 뒤 생성된 별도의 QR코드를 직원에게 보여주니 반납 절차는 간단히 마무리됐다. 가습기 1대당 3만원의 모바일 카드가 반납일 이후 첫 번째 수요일에 지급된다는 설명을 끝으로 조금 전까지 들고 있던 가습기는 카운터 안쪽으로 자취를 감췄다.

 

가습기 반납 직전, 기자 바로 앞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앞서 줄을 선 한 손님이 매장 직원에게 ‘이벤트 컵을 받으려고 하는데 지금 주문 가능한가요?’라고 물으면서다. 직원은 익숙한 듯 “오후 2시부터 주문하실 수 있다”고 안내했다.

 

지난 21일 스타벅스의 ‘e-프리퀀시’ 증정품이었던 가습기를 반납하기 위해 들른 스타벅스 매장에 붙은 ‘리유저블 컵’ 증정 안내문. 김동환 기자

 

이날은 공교롭게도 스타벅스가 스트릿 패션 브랜드 ‘베이프(BAPE)’와 협업해 진행하는 ‘스위트 아워’ 이벤트 기간이었다. 특정 음료를 주문하면 베이프의 대표 캐릭터 ‘베이비 마일로’가 그려진 리유저블 컵을 선착순으로 제공하는 행사다. 매장 게시판에는 ‘금일 준비 수량 45개’라는 공지가 붙었다. 누군가는 화재 위험이 있는 물건을 되돌려주기 위해 줄을 서고, 다른 누군가는 한정판 플라스틱 컵을 얻기 위해 같은 줄에 섰다.

 

이벤트 시작과 동시에 중고 거래 플랫폼에는 ‘리유저블 컵’ 판매 글이 실시간으로 쏟아진다. 가격은 개당 1만원 선으로 음료 가격을 고려하면 큰 시세 차익은 없지만 유사한 게시글이 수십 개씩 올라와 굿즈 열풍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준다. 한 판매자는 “내용물은 개인 텀블러에 옮겨 담았고, 리유저블 컵은 깨끗하게 세척해 건조했다”며 나름의 정성을 강조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장면은 스타벅스가 마주한 거대한 모순을 상징한다. 스타벅스라는 브랜드가 주는 신뢰와 감성 덕분에 전국에서 39만여개가 배포됐던 가습기는 리콜 결정과 함께 하루아침에 처분 대상으로 변했다. 이는 스타벅스의 화려한 굿즈 전략이 얼마나 위태로운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팬덤을 이용한 굿즈 마케팅은 스타벅스를 지금의 위치에 있게 한 강력한 무기지만, 반대로 열광의 유효기간은 ‘안전’이라는 기본값이 흔들리는 순간 허무하게 끝난다.

 

블로그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가습기 반납 인증 글이 이어졌다. 대다수 누리꾼은 브랜드 신뢰도를 위해서라도 증정품의 안전 확보에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증정품을 받으려 열심히 프리퀀시를 모았는데 허무하게 반납으로 끝났다”며 “소비자의 신뢰를 깎아먹는 일이 더는 반복되지 않아야 할 것 같다”는 한 누리꾼의 글에는 동의하듯 ‘좋아요’가 여러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