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도널드 트럼프 사무실에는 콜라 버튼이 있대요!”
아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대화의 화제도 달라졌습니다. 그전에는 공룡, 기차, 우주 이야기를 했다면, 요즘은 세계대전, 백악관, 특수부대 같은 이야기를 즐겨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콜라 사랑은 초등학생들도 알 정도로 유명합니다. 백악관 집무실 책상에 달린 빨간 버튼을 누르면 콜라 담당 직원이 유리컵에 담긴 차가운 다이어트 콜라를 즉시 대령한다는 것인데, 트럼프는 하루에 열두 잔의 콜라를 해치운다고 합니다. 트럼프는 건강을 위해 술을 끊으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보상으로 콜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일반 콜라가 아니라 인공 감미료인 아스파탐과 아세설팜칼륨을 사용한 다이어트 콜라를 선택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재력가이자 정치인조차 두려워할 정도로, 설탕의 유해성은 강력합니다. 충치, 비만, 지방간, 당뇨병, 각종 대사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될 뿐 아니라, 중독성도 상당합니다. 미국의 최신 식이 지침에서는 신생아부터 4세까지는 설탕을 포함한 인공 당류를 섭취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아이들뿐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에서 당뇨병은 사망원인 7, 8위를 다투는 질환인데, 사망원인 2위인 심장질환과 4위인 뇌혈관질환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허기에 시달리던 과거에는 부와 풍요의 상징이었고, 요리 예능 프로그램 열풍이 불던 시기에는 ‘밈’이 되기도 했던 설탕이, 이제는 살인자로 취급받는 것입니다.
최근 SNS를 통해 ‘설탕세’ 이슈가 떠올랐지만, 사실 설탕세 도입 논의는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이루어져 왔습니다. 형태는 조금씩 달랐지만, 핵심은 늘 비슷했습니다. 가당 음료나 가당 식품에 부담금을 매김으로써 이를 생산하는 기업은 스스로 설탕을 줄이도록, 소비자는 구매를 덜 하도록 유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설탕 자체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거부감이 없어지진 않습니다. 설탕을 즐기는 납세자에 대한 차별이 될 수 있어 조세 평등 위반이라는 지적,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자유권 침해라는 지적, 설탕이나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은 저소득층이 주로 섭취하므로 역설적으로 역진세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하지만 사실 진짜 중요한 건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아닐까요.
선진 복지 국가로 손꼽히는 덴마크의 경우, 무려 13년 전 지방 함량이 식품에 세금을 물리는 ‘포화 지방 과세’를 도입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과세 대상은 버터, 우유, 피자, 식용유, 육류 등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세금 때문에 식품 가격이 오르자,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독일이나 스웨덴으로 건너가 쇼핑하는 편법을 썼고, 내수 식품업체들이 위축되면서 일자리가 줄었습니다. 결국 일 년 만에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반면 성공 사례로 평가되는 영국은, 세금 부과 대상을 ‘가당 음료’로 한정해 국민의 저항을 줄였습니다. 처음부터 ‘전 국민의 건강’을 거론하기보다는, ‘주스와 탄산음료를 즐기는 아동 청소년’을 세부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이처럼 점진적이고 구체적인 타기팅을 통해 시판 음료의 설탕 함량을 무려 47% 낮추고 초등학생 비만율을 대폭 줄이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설탕세 역사가 가장 긴 노르웨이의 사례도 흥미롭습니다. 노르웨이는 1922년 설탕세를 도입했는데, 처음에는 국민의 건강 증진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심각한 경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사치재라고 여겨지는 초콜릿과 사탕류에 세금을 물린 것이었습니다. 노르웨이에서도 마찬가지로 ‘외국 원정 쇼핑’ 현상이 나타났지만, 그 역사가 길어지자 자연스레 설탕 소비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노르웨이의 부모들은 토요일 등 특정한 날을 정해 자녀들에게 사탕이나 초콜릿을 먹을 수 있게 허용한다고 합니다. 노르웨이 출신 예능인이 토크쇼에서 나와서 이 이야기를 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아이들이 19살이 되는 시점부터 설탕 섭취량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고 하니 정말 담배나 알코올과 비슷한 취급을 받는 셈입니다.
다만, 통계에 따르면 노르웨이의 비만율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어 그 실효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있습니다. 최근 다이어트 트렌드는 ‘당’과 ‘탄수화물’을 줄이는 것인데, 그렇다고 쌀, 밀가루, 감자, 고구마에 부담금을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참 어렵고 또 어렵습니다. 분명한 건, 너무 성급하거나 극단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충분한 준비 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검토하고 시행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영양표시 의무화부터 강화하면 어떨까요. 현행 법령에 따르면 모든 가공식품에 열량, 나트륨, 당류 등 영양표시가 의무화되어 있지만, 카페나 식당에서 파는 음료와 음식의 영양 성분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또한 영양 성분표를 포장지 구석에 코딱지만 하게 대충 적어두는 게 아니라, 식품 전면에 알아보기 쉽게 표기하게 하는 식으로 의무화하는 것도 하나의 아이디어가 될 것입니다. 가뜩이나 세계 그 어느 국민보다 자기 관리와 다이어트에 엄격한 우리나라 사람들입니다. 당 함량이나 나트륨 함량, 불포화 지방 함량이 눈에 띄게 적혀 있다면, 자기도 모르게 집어 들었던 상품을 자연스럽게 내려놓는 일이 많아질 것입니다.
충분한 유예기간을 거쳐 본격적인 과세 정책이 도입된다면, 이때는 저소득층 대상 식품 바우처 지원제도, 당 함량 구간별 부담금 세분화 제도, 가격 변동 공시 제도 등 부작용 완화 정책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해외 온라인 직구로 쉬워진 원정 쇼핑에 대한 사전 예방책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나씩 차근차근 합을 맞춰 가야만, 설탕세는 ‘설탕을 먹지 못하게 막는 억압적인 제도’가 아니라, ‘국민의 현명한 선택을 돕는 보조 장치’로 작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밥’이니까요.
서아람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