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이 23일 이탈리아 베로나 콜로세움에서 열린 폐회식을 끝으로 17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이번 대회는 동계 스포츠의 전통적 강국들이 건재를 과시하는 한편,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의지와 냉혹한 승부의 세계가 교차하며 수많은 드라마를 양산했다. 전설의 귀환과 새로운 영웅의 탄생, 그리고 경기장 밖에서 벌어진 신념의 투쟁까지, 이번 동계올림픽을 뜨겁게 달군 장면들을 돌아봤다.
◆헤라스케비치 추모 헬멧에 담은 신념
우크라이나 스켈레톤 선수 블라디슬라프 헤라스케비치는 자신의 헬멧에 전쟁으로 희생된 동료 선수들의 얼굴을 새겨 넣었다. 그는 스포츠가 평화를 상징해야 하며 조국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다는 신념을 담았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를 ‘정치적 선전 금지’ 규정 위반으로 간주하고 헬멧을 교체하지 않을 시 출전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헤라스케비치는 “죽은 영웅들의 얼굴을 가리고 경기에 나갈 수 없다”며 끝내 출전을 포기했다. 이는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고 헤라스케비치는 올림픽 출전 대신 조국 우크라이나의 훈장을 받았다.
◆요한네스 클레보 ‘동계 전설’ 등극
노르웨이 ‘크로스컨트리 스키 천재’ 요한네스 클레보는 이번 대회에서 인간의 한계를 시험했다. 그는 단거리 스프린트부터 장거리 매스스타트까지 종목을 가리지 않고 설원을 누비며 이번 대회 금메달 6개를 싹쓸이했다. 이렇게 클레보는 1980 레이크플래시드 대회에서 에릭 하이든(미국·스피드 스케이팅)이 세운 단일 대회 최다 금메달(5개) 기록을 46년 만에 갈아치웠다. 또한 클레보는 통산 올림픽 금메달 개수를 11개로 늘리며 동계올림픽 역사상 개인 최다 금메달 신기록도 썼다. 종전 기록은 바이애슬론의 올레 에이나르 비에른달렌, 크로스컨트리스키의 비에른 델리, 마리트 비에르옌(이상 노르웨이)이 가지고 있던 8개였다. 클레보의 과학적인 하이브리드 주법과 폭발적인 막판 스퍼트는 경쟁자들을 무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시프린과 본 엇갈린 스키 여제
알파인 스키에서는 미국의 두 ‘스키 여제’가 극적인 대비를 이뤘다. 먼저 웃은 쪽은 미카엘라 시프린이었다. 2022 베이징 대회에서 ‘노메달’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아들었던 시프린은 이번 대회 여자 회전 종목에서 8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프린은 결승선을 통과한 후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며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추모했다. 반면 만 41세의 나이로 기적 같은 복귀를 선언했던 린지 본의 도전은 잔혹한 부상 앞에 멈춰 섰다.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이겨내고 올림픽 무대에 다시 선 것만으로도 찬사를 받았으나 활강에서 출발 13초 만에 오른팔이 기문에 부딪히며 중심을 잃고 설원에 나뒹굴었다. 헬리콥터에 실려 현지 병원으로 옮겨졌고 왼쪽 다리를 크게 다쳐 4차례 수술을 받은 뒤 미국으로 귀국해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을 안타깝게 마무리했다.
◆180억의 가치, 유타 레이르담
네덜란드 스피드스케이팅 스타 유타 레이르담은 실력과 화제성으로 이번 대회의 스타로 떠올랐다. 레이르담은 여자 1000m에서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 500m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며 실력을 입증했다. 하지만 그녀가 더 큰 주목을 받은 것은 경기장 밖에서의 파급력이었다. 대회 현지 출전부터 약혼자인 미국의 유튜버 겸 프로 복서 제이크 폴의 전용기를 타고 왔을 뿐 아니라 화려한 외모와 당당한 태도로 전 세계 팬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금메달 확정 직후 스포츠 브라를 노출한 ‘지퍼 세리머니’는 레이르담의 마케팅 가치를 약 1500만달러(약 187억원)에 달하게 만들었다. 레이르담이 입었던 경기복 경매가는 우리 돈으로 1000만원이 넘을 전망이다.
◆‘쿼드 신’ 말리닌의 충격적 실수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에서는 이번 대회 가장 큰 이변이 발생했다. 세계 최초로 4회전 반 점프인 ‘쿼드러플 악셀’에 ‘백플립’까지 선보였던 일리야 말리닌(미국)이 쇼트 프로그램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도 프리 스케이팅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말리닌은 첫 점프인 쿼드러플 악셀에서 빙판에 강하게 넘어졌고, 이후 연쇄적인 실수로 평정심을 잃었다. 결국 말리닌은 최종 8위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피겨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기술적 우위를 점하고도 심리적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그의 실패는 ‘스포츠에 당연한 승리는 없다’는 격언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