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사법개혁 3법(법왜곡죄·재판소원·대법관 증원)’ 처리 강행을 공언한 데 대해 조희대 대법원장이 23일 “헌법 개정 사항에 해당할 수 있는 중대한 내용이고 국민들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갈 수 있는 문제”라며 공론화와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는 여당의 3대 사법개혁안이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제도”라며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출근길에 취재진 질문에 “이번 법안들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생긴 이래 8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사법제도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라며 “공론화를 통해 각계각층의 전문가 의견과 국민 의견을 폭넓게 듣고 충분한 토론을 거쳐서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어 “일부에서 독일을 예로 들고 있지만, 우리 헌법은 독일과 내용이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헌법재판소는 최근 재판소원 도입과 관련해 “독일 등에서 법원을 중심으로 한 종래의 사법권이 전체주의 또는 권위주의 독재체제를 방어하기는커녕 이에 협력한 과거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판소원을 도입한 비교법적 교훈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했는데, 조 대법원장의 발언은 이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조 대법원장은 12일에도 “숙의 끝에 사법개혁을 이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영재 법원행정처장도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우려를 표했다. 박 처장은 ‘헌재가 재판소원을 시행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 질의에 “기존 제도와 전혀 다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라 소송 법규의 정비가 필요하다”며 “시스템도 서로 연계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헌재법 개정만으로는 즉시 시행할 수 없다”고 답했다.
국회는 24일 본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본회의에서 사법개혁 3법(법왜곡죄·재판소원제·대법관 증원)과 행정통합특별법 등을 상정할 예정이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법안 처리를 저지한다는 방침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를 두고 충분한 논의 없이 속도전만 펴고 있다는 비판이 인다. 한 전직 대법관은 “사법개혁안 처리 과정에서 숙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명박정부 때도 대법관 수를 늘리는 건 효용이 없다는 결론이 났다”고 짚었다. 2010년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 주도로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이 추진됐으나, 여야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결국 백지화됐다. 대한변호사협회장을 지낸 이찬희 변호사는 “법왜곡죄는 왜곡이라는 해석 기준이 모호해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 불명확한 개념을 사용하면 누구도 사법기관 판단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