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낯선 ‘은색 덩어리’… 컴퓨터 연산이 빚어낸 디자인 혁명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78)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건축가 자하 하디드 신개념 건축문법
각기 다른 외장패널 4만5133장 사용
벽·천장 없이 곡선·사면으로 재조합

동대문 지형·유동인구 등 데이터化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디자인 생성
유쾌함·역동성으로 해석해 재창조

준공된 지 10여년이 지났으니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마주할 때마다 낯선 건축물이 있다. 바로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이다. 그런데 곱씹어 볼수록 ‘낯설다’라는 표현만큼 DDP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단어도 없는 듯하다. ‘낯설다’는 ‘얼굴’을 의미하는 ‘낯’과 ‘익지 않았다’ 혹은 ‘서투르다’라는 뜻의 ‘설다’가 합쳐진 말이다. 건축에서 ‘낯’은 건물의 얼굴, 즉 파사드(Facade)를 뜻한다. 결국 건축물이 낯설다는 건 그 건물의 얼굴이 우리가 지금껏 보아온 익숙한 모습이 아니어서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의미다.

DDP가 낯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DDP에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건물의 얼굴이 없다. 어디가 주출입구인지 정면과 측면은 어디인지 구분조차 모호하다. 우리가 흔히 사진으로 접하는 DDP의 모습조차 특정 위치에서 바라본 풍경일 뿐, 그것을 건물의 파사드라 정의할 수는 없다. DDP는 수천 년간 인류의 건축을 지배해 온 직선과 직각의 세계(유클리드 기하학·Euclidean Geometry)가 아니다. 벽과 천장의 경계가 사라진, 매끈한 은색 덩어리이다.

‘파라메트릭 디자인’이라는 통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설계된 DDP는 정면과 측면이 구분되고 벽과 천장이 나뉘는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다. 그래서 준공된 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볼 때마다 낯선 현대 예술품 같다.

사실 이러한 ‘낯섦’은 현대 예술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과거의 예술이 비례와 조화를 통한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현대 예술은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는 ‘새로움’ 그 자체에 주목한다. ‘최전선에 선 공격수’라는 의미의 예술 집단, 아방가르드(Avant-garde)가 대표적이다. 아이디어를 예술 작품의 핵심(‘개념 예술’)으로 여겼던 전위 예술가들은 익숙한 관습을 거부하고 의도적으로 낯설고 불편한 방식을 통해 예술의 지평을 넓혔다.



그들이 사용했던 기법 중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고 그 과정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이 있었다. ‘데페이즈망’은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물을 전혀 다른 환경이나 맥락에 놓거나 상관없는 것들과 합쳐 놓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공공공간에 설치된 엄청난 크기의 옷핀이나 가위 조형물(크기의 변화),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암석(변경)이나 호랑이 머리를 지닌 참새(사물의 잡종화) 그림 같은 것들이다.

DDP가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오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DDP에는 기존 건축 문법과 다른 새로운 접근 방식이 적용되었다. 2007년 국제지명초청현상설계경기 당시,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는 ‘환유의 풍경(Metonymic Landscape)’이라는 난해한 개념을 제안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동대문 프로젝트가 가지는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도시적, 사회적, 경제적 요소들을 환유적으로 통합하여 하나의 풍경을 만들”고자 했다. 건물이 아닌 ‘풍경’을 의도했기에, DDP에 얼굴(파사드)도, 경계도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환유(換喩)’라는 말이 쉽지 않은데, 사전적 정의를 보면 “어떤 낱말 대신에 그것을 연상시키는 다른 낱말을 쓰는 수사법”이다. 예컨대 미국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사무직 노동자를 ‘화이트칼라’로, 국회의원을 ‘금배지’로 부르는 식이다. 환유의 핵심은 대상을 가리키는 대신, 그 대상이 지닌 속성이나 특징으로 바꿔 부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자하 하디드는 DDP를 설계하기 위해 동대문의 복잡다단한 맥락과 두터운 역사를 무엇으로 환유(치환)했을까? 자하 하디드가 DDP를 설계한 방식을 보면 그가 택한 환유의 언어는 바로 ‘데이터(Data)’다.

각기 다른 형태의 알루미늄 패널이 조합된 DDP의 외관.

자하 하디드는 DDP를 설계하며 동대문의 지형, 유동 인구, 교통량, 건축물의 구조적 하중 등 고려해야 하는 수많은 요소를 데이터, 즉 가변적인 변수(Parameter)로 치환했다. 그리고 각 변수 간의 관계를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설정해 디자인이 자동으로 생성되도록 했다. ‘파라메트릭 디자인(Parametric Design)’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접근법은 다양한 변수들이 바뀔 때마다 디자인을 쉽고 빠르게 수정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각 변수 간의 최적값을 설계에 반영할 수 있다.

자하 하디드의 파트너이자 그가 죽은 뒤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를 이끌고 있는 패트릭 슈마허(Patrik Shumacher)는 파라메트릭 디자인을 모든 구성 요소가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자기완결적 순환 체계(Autopoiesis)’라고 정의했다. 마치 우리의 몸처럼 이 시스템은 외부 자극에 의해 단 하나의 요소만 바뀌어도 그 영향이 시스템 전체로 전달되고 모든 요소가 연쇄적으로 반응한다(Self-referential system). DDP가 부분적으로 구분되는 건물이 아니라 유기체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파라메트릭 디자인은 DDP처럼 건축물을 둘러싼 요소들이 다양하고 복잡할수록 빛을 발한다. 통상적인 방식이었다면 건축가는 설계를 위해 고려해야 하는 모든 요소를 분석하고 해석한 뒤 자기 체화하여 손으로 도면을 그린다. 만약 설계 도중 조건 하나가 바뀌면 건축가는 처음부터 다시 도면을 그려야 한다. 하지만 파라메트릭 디자인에서 건축가는 펜을 든 디자이너라기보다 규칙을 짜는 설계자 - 물론, 이 또한 ‘architect’라고 부른다- 이다. 설계조건이 바뀌면 변수를 조정하면 된다. 그러면 알고리즘이 알아서 계산해 최적의 형태를 다시 만들어 준다. 바야흐로 건축물의 형태를 건축가의 손끝이 아닌, 컴퓨터의 연산이 빚어내는 시대가 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DDP의 형언하기 힘든 형태와 건물을 덮고 있는 4만5133장의 각기 다른 패널은 건축가의 손끝이 아닌 수많은 데이터가 충돌하며 찾아낸 최적의 연산 결과다.

과거 모더니즘 건축가들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고 선언했다면, 파라메트릭 디자인의 시대에서 “건축물의 형태는 데이터를 연산한 공식을 따른다(Form Follows Formula)”고 정의할 수 있다.

DDP는 자하 하디드의 안이 당선된 직후부터 서울에서 가장 논쟁적인 건축물이 되었다. 2015년 뉴욕타임스가 ‘꼭 가봐야 할 명소 52’로 서울을 선정하며 DDP를 첫 번째 이유로 꼽았지만, 한편에서는 주변의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불시착한 우주선 같다는 격렬한 비판도 쏟아졌다. 심지어 한 언론의 설문 조사에서는 준공도 되기 전에 ‘최악의 현대건축물’ 5위에 이름을 올리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비판의 요지는 명확했다. 동대문운동장이라는 장소의 역사성을 지워버렸고, 한양 도성이라는 주변 환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형태라는 것이다. 하지만 DDP의 알고리즘을 짠 건축가의 입장에서는 역사적 요소를 변수로 입력함으로써 이를 설계에 반영했고 형태는 알고리즘이 각각의 변수를 최적화해 도출했을 뿐이다. 즉, 이는 역사를 다루는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를 해석하고 반영하는 ‘언어(Language)’의 차이였던 셈이다.

물론 알고리즘이 디자인한다고 해서 건축가의 의도가 완전히 배제되는 건 아니다. 최종적으로 어떤 규칙을 짤 것인가를 결정하는 건 건축가의 몫이기 때문이다. 자하 하디드는 DDP가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유쾌함’과 ‘역동성’을 재창조하는 사회문화적 중심축(Socio-cultural Hub)이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유기적인 곡선을 가장 적당한 형태로 생각했다. 즉 알고리즘이 작동하기 전에 ‘유기적인 곡선’이라는 형태는 정해져 있었다는 얘기다.

DDP는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왔던 어떤 건축물보다 새로운 건축물이다. 그래서 낯설다. 낯설고 새롭다는 것이 ‘최고의 건축물’이냐, ‘최악의 건축물’이냐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것이 세련되고 편리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설익어 불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DDP에 대한 평가는 정확한 기준에 따라 엇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낯선 새로움이야말로 DDP가 서울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동시대적인 건축물이라는 명백한 증거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