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 40년이 넘은 서울 강남 은마아파트서 불이 나 10대 학생이 숨지고 가족 등 3명이 다쳤다. 아파트는 이중주차 문제로 소방차 진입이 어려웠고,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숨진 학생은 올해 고등학교 입학 예정으로 5일 정도 전쯤 이 아파트로 이사온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 1번지’ 대치동에 있는 은마아파트는 새 학기를 앞두고 학부모들이 좋은 학군을 찾아 전세 수요가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24일 소방과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18분 14층짜리 아파트 8층에서 불이 났다.
17세 여성 A양이 숨졌고 함께 있던 모친 B(39)씨와 여동생 C(13)양은 얼굴 화상 등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다. 불이 난 집 위층 주민 1명도 연기 흡입 등으로 병원에 이송됐으나 부상자들 모두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당시 아파트 주민 70여명이 스스로 대피했다.
소방은 인력 143명과 장비 35대를 투입해 화재 발생 1시간20여분 만인 오전 7시36분쯤 불을 완전히 껐다.
경찰에 따르면 불은 거실 주방 쪽에서 시작됐으며, 사망자는 베란다에서 발견됐다. 사고가 난 아파트 8층 베란다 창문은 깨져 있었고 12층까지 검은 그을음만 남았다. 이날 소방 당국과 경찰은 오후까지 합동감식을 진행하고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 규모를 조사했다. 현재까지 범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A양이 베란다로 피했지만 탈출하지 못해 숨지면서 늦어진 소방차 진입 문제가 지적됐다.
화재 당시 소방차 여러 대와 구급차들이 이중 주차된 차들 때문에 진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주민 소모(30)씨는 “은마아파트 주차난은 오래된 문제라 매일 이중주차를 하고, 주차를 막으려 설치한 안전봉을 둘러서 주차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화재 당시 주민들이 차를 빼달라고 전화하고 차를 밀어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은마아파트에는 지하 주차장이 없다. 또 다른 주민 이모(46)씨는 “아이가 미처 탈출하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사망한 것으로 나타나 안타깝다”고 전했다. 화재 현장에서는 아이 아빠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주저앉아 오열해 안타까움을 샀다.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 12층에 산다고 밝힌 주민 이모(60)씨는 “오전 5시쯤부터 환풍기를 통해 연기가 올라왔는데 순식간에 집 안에 검은 연기가 가득해졌다”며 “집에는 스프링클러도 없고, 화재경보기는 있지만 급히 대피하느라 들은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은마아파트는 1979년 준공된 서울의 대표적인 노후 아파트다. 4400여세대가 입주해 있다. 1990년대 말부터 재건축 계획을 추진했지만 안전진단 미통과와 조합 내분 등으로 연달아 좌초되며 ‘강남 재건축 상징’으로 꼽혔다. 지난해 9월 정비계획안이 확정돼 2030년 49층 5893세대 대단지로 재건축 착공을 앞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