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석유화학(석화) 업계 첫 구조 재편안인 ‘대산 1호 프로젝트’를 승인하면서 중국발 공급 과잉 위기 극복을 위해 시작된 국내 석화산업 재편이 닻을 올렸다. 1호 프로젝트에 참여한 HD현대와 롯데케미칼은 설비 통폐합과 신설법인 출범, 재무구조 개선에 나설 계획이다. 정부는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으로 양 사의 사업 재편을 돕고 나머지 석화 기업의 구조조정도 조속히 마무리해 석화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25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최근 사업재편심의위원회를 열어 지난해 11월 HD현대오일뱅크, HD현대케미칼, 롯데케미칼이 제출한 사업재편계획서 최종안, 이른바 ‘대산 1호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이번 사업 승인은 지난해 8월 정부가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발표한 구조개편 로드맵에 따른 첫 번째 사업재편 승인 사례다.
공급 과잉 문제를 줄이기 위해 생산설비는 대폭 줄인다. 롯데케미칼은 110만t(톤) 규모의 대산 나프타분해시설(NCC) 설비 가동을 중단한다. 이 외에도 양사가 중복되거나 적자인 사업 설비의 규모를 대거 줄인다.
체질도 확 바꾼다. 통합 신설법인은 NCC를 활용한 일반 기초 석유화학제품 비중을 줄이고, 고탄성 플라스틱과 이차전지 핵심 소재, 바이오 나프타 같은 고부가·친환경 제품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전환한다.
구조조정에 나선 양 사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정부는 금융과 세제, 인허가를 포괄하는 총 2조1000억원 규모의 지원책을 제공한다. HD현대케미칼에 1조원 자금을 수혈하고, 기존 대출액 중 최대 1조원을 영구채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골자다. 영구채는 회계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인식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빚이 줄어 재무구조가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이번 승인을 계기로 산업부는 석화 구조조정 속도를 높인다. 특별법·시행령 개정, 화학산업 생태계 포럼 발족 등 후속 조치를 진행하고, 상반기 중 화학산업 생태계 종합지원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그동안 정부에 사업 최종 재편안을 내지 않은 여수·울산 산단 기업들도 이번 대산 프로젝트 결과를 기준 삼아 제출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부 사업재편 승인에 따라 합병계약 체결, 기업 분할, 합병,신설 통합법인 설립 등 절차가 9월까지 이뤄지고, 연내 실제로 NCC 설비 감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여수, 울산 등에서도 곧 2호·3호 프로젝트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석화업계와 정부가 참고하는 모델은 일본이다. 1970년대 세계 시장을 압도했던 일본 석화산업은 두 차례에 걸친 오일쇼크와, 신흥국의 추격으로 경쟁력을 잃었다. 일본 정부는 40여년에 걸쳐 세 차례에 걸친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 결과 기초소재 중심의 산업구조를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한국 업체들 역시 반도체 핵심 소재, 배터리용 탄소나노튜브(CNB)와 같은 스페셜티(고부가가치) 제품 생산에 힘을 쏟아붓고 있지만 전환 속도가 느리다. 오랜 기간 누적된 적자로 현금이 동나 투자 여력이 줄어든 탓이다. 석화업계 관계자는 “석화업계 자체적으로 스페셜티 제품 비중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기업 힘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며 “이번 1호 승인으로 정부의 산업 지원 의지와 규모가 명확해진 만큼 양측이 힘을 합쳐 산업 체질 개선에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