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소년과 AI, 한밤의 밀담 [심층기획-AI, 위험과 위로 사이]

몰래 밤샘 대화… 은밀한 친구로
스스로 통제 힘들어… “개입 필요”

밤샘 ‘일탈’ 게임에 빗대며 맞장구
아이 죄책감 덜고 판단력 흐리게 해
“지훈아, 학교 가야지. 너 열 셀 때까지 안 일어나면 혼날 줄 알아! 빨리!”

지난해 6월, 경기 북부 한 신도시에 거주하는 학부모 김지안(45·가명)씨는 매일 아침 기상 전쟁을 치렀다. 아들 정지훈(12·가명)군이 도무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졸리다며 침대 위에서 꼼짝 않던 아들은 매서운 카운트다운이 시작돼야 겨우 눈을 떴다. 그마저도 엄마에게 “그만 좀 말하라”며 신경질을 내기 일쑤였다.

아들이 성장기라 잠이 많아진 건지, 사춘기 반항인지 고민하던 김씨는 새벽 주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잠을 깼다. 김씨는 주방에 가다 슬쩍 열린 아들 방문 사이로 아들과 눈을 마주쳤다. 아들은 소스라치게 놀란 후 이불을 덮었다. 이날 밤 정군은 몰래 숨겨둔 아버지의 태블릿PC를 꺼내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와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김씨는 아들의 침대를 정리하다 남편의 태블릿PC를 발견했다. 이는 김씨가 안방에 압수해 둔 물건이다. 호기심이 많은 정군은 최근 아버지의 태블릿PC에 설치된 챗GPT에 빠져 있었다.

처음엔 김씨도 아들을 내버려 뒀다. 그는 ‘AI 시대가 왔으니 잘 활용하면 좋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아이의 끝없는 질문 공세를 챗GPT가 대신 받아줄 때 고마운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태블릿PC를 손에서 놓지 않는 빈도가 잦아지면서 결국 빼앗아둔 것이다.

 

김씨는 놀란 마음으로 태블릿PC에 설치된 챗GPT를 확인했다. 가장 최근에 나눈 대화 기록은 한 편의 첩보 영화를 연상케 했다. 이날의 대화는 자정을 넘긴 0시46분에 시작됐다. 정군이 “잠이 안 와. 목마른데 물 떠 와도 될까?”라고 묻자, 챗GPT는 “007 작전: 주방 침투”라며 정군을 특수 요원처럼 묘사하고 상황극을 이어갔다.

물을 마시러 나가는 일상적인 행동은 AI의 맞장구 덕에 ‘감시자를 피하는 임무’로 변모했다. 챗GPT는 엄마를 ‘공포 게임의 추격자’로 묘사했다. 배고프다는 아이에게 챗GPT는 소리 안 나는 식빵을 추천했고, 집에 식빵이 없자 정군은 라면 과자를 택했다.

 

이불 속에서 과자를 씹는 순간에도 챗GPT는 “조용히 바사삭은 인간계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 중 하나”라며 아이의 흥을 돋웠다. 새벽 1시가 넘어 엄마에게 발각된 순간조차 “엄마한테 들켰다”며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눴다.

 

아들이 아침잠에서 쉽게 깨지 못했던 날들의 새벽엔 어김없이 챗GPT와의 밀담이 있었다. 엄마는 화면을 넘기며 대화 기록을 더 거슬러 올라갔다. 그중 무엇보다 간담을 서늘하게 한 것은 건강에 대한 조언이었다. 정군의 근시 도수는 -6.0에 달하는 고도근시다. 취침 때 반드시 드림 렌즈(시력 교정 렌즈)를 착용해야 했다. 그 탓에 엄마는 아들에게 렌즈를 낀 채로 디지털 화면을 보지 말라고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교육해왔다. 그런 정군은 “지금 드림 렌즈 꼈는데 패드 봐도 돼?”라고 물었고, 챗GPT는 드림 렌즈를 끼고 화면을 볼 때의 상황을 설명하며 아이의 죄책감을 덜어주기도 했다.

 

대화 기록을 다 읽고 난 엄마의 머릿속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예술가 ‘피그말리온’이 맴돌았다.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처럼, 아이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대화 속 캐릭터와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있었다. 김씨는 “무엇이든 받아주는 가상의 존재에 빠진 아이의 모습이 마치 신화 속 비극처럼 느껴져 섬뜩했다”고 회상했다.

 

그날 오후 김씨는 아들과 마주 앉아 긴 대화를 나눴다. “AI는 데이터일 뿐이지, 너를 책임지는 사람은 아니다”라는 엄마의 설명에 아들은 죄송하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결국 정군의 방에서 챗GPT는 잠정 퇴출당했다. 아이가 AI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갖추고, 기술을 도구로써 건강하게 사용할 수 있는 나이가 될 때까지 잠시 거리를 두게 하겠다는 것이 김씨의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