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25일 ‘법왜곡죄’(형법 개정안 제123조의2)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막판 진통을 겪었다. 법안의 위헌성에 대한 당내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다. 민주당은 결국 위헌 논란이 제기된 조문을 수정해 본회의에 상정했다. 원안 고수를 주장해 온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즉각 “누더기 법을 만들었다”며 “당 지도부와 원내대표가 책임져야 한다”고 반발했다.
◆與, ‘의도적’·‘경험칙’ 두고 고심
민주당은 이날 의총을 열고 본회의에 상정할 법왜곡죄를 수정했다. 법왜곡죄는 판검사가 법 적용을 고의로 잘못하거나 증거를 조작하는 경우 10년 이하 징역에 처하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위헌 논란이 된 내용은 원안 1호의 ‘의도적으로’라는 문구와 3호의 ‘논리나 경험칙에 현저히 반하여’라는 문구다. 1호는 판검사가 법령을 의도적으로 잘못 적용해 당사자의 일방을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드는 경우를, 3호는 증거 없이 범죄사실을 인정하거나 또는 논리나 경험칙에 현저히 반해 사실을 인정한 경우를 각각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민주당은 크게 세 가지를 수정했다. 우선 처벌 대상을 모든 사건에서 ‘형사사건’으로 좁혔다. 1호의 ‘의도적으로’라는 문구를 ‘적용 요건이 충족되지 아니함을 알면서도 이를 적용하거나, 적용되어야 할 법령임을 알면서도 이를 적용하지 아니해 의도적으로’로 수정하고 ‘법령 해석의 합리적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재량적 판단은 이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예외 규정을 설립했다. 3호의 ‘논리나 경험칙에 현저히 반하여’라는 문구는 삭제했다.
천준호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본회의에서 수정안 제안 설명에 나서며 “법왜곡죄 개념의 불명확성을 제거하고, 논리나 경험칙에 현저히 반하는지 여부를 구성요건에서 삭제해 사법부의 독립을 위축시킨다는 우려를 불식시켰다”고 강조했다.
◆與 강경파 “내용·과정 문제” 반발
당내 강경파는 크게 반발했다. 김 의원은 의총이 끝나고 기자들과 만나 “내용도 문제이고 과정이 굉장히 졸속이었다”고 말했다. 법왜곡죄 처벌 대상을 형사사건으로 좁히면 민사·행정사건 등은 제외된다는 지적이다. 김 의원은 지도부가 의총 한 시간 전에 법사위에 수정안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의총에서도 갑작스럽게 당론으로 채택했다고 주장했다. 추미애 법사위원장도 페이스북에 “형사사건에 한정해서 적용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적었다.
추 위원장과 김 의원 등은 의총에서도 이같이 수정안에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수정안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들이 잇따르자, 정청래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가 주도해 수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당 지도부는 이전부터 1호·3호를 수정한 법안을 마련한 바 있다. 이 두 조항은 형사처벌 대상을 분명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나 위헌이라는 지적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하급심 판결이 대법원 판례에 도전할 수 없게 된다는 한계도 지적돼 왔다.
의원들 사이에서도 “지금의 원안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본회의 표결에서 찬성표를 누르기 어렵다”는 등 반발이 지속됐고, 지난 24일 의총에서도 원안에 반대하는 의견이 나왔다. 조국혁신당이 법안 수정 필요성을 제기한 것도 민주당의 수정안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으로선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를 종결시키기 위해 혁신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野 “법왜곡죄는 법관 겁박죄”
국민의힘은 법왜곡죄를 ‘법관 겁박죄’라고 규정하며 본회의 처리에 강하게 반발했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삼권분립의 원칙을 단숨에 무너뜨리는 이 엄중한 사안을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민주적 공당임을 스스로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며 “법왜곡죄는 명확한 기준도 없이 판사와 검사의 목에 처벌이라는 칼날을 들이대는 ‘법관 겁박죄’”라고 주장했다. 박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사법부를 마음대로 길들이려는 헛된 야욕을 버리고 오만한 속도전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법조계는 민주당의 수정안이 여전히 위헌적이라는 입장이다. 한 부장판사는 “적용 대상을 형사재판에 한정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내용이 모호해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면서 “검사나 판사가 머릿속으로 알면서 적용했는지 아닌지를 도대체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느냐”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한 헌법 조항에도 어긋난다고 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을 왜곡하면 처벌하겠다면서 민사사건은 제외하고 형사사건에만 한정하는 발상이 더 위헌성이 크고 형평성도 부족하다고 본다”며 “법 왜곡죄는 결국 판사와 검사, 수사기관을 협박하는 용도로 쓰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